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레이블이 불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불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법구경 - 2025. 4. 30(수)

Source: https://blog.naver.com/hanjun105300/221636590843

제 1 장 대구

  1. 모든 것을 마음이 다스리고,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괴로움이 따르니, 마치 소와 말 걸음에 수레 바퀴가 따르듯 하리.
  2. 모든 것을 마음이 다스리고,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즐거움이 따르리니, 마치 그림자가 꼴을 따르듯이 하리.
  3.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것을 훔쳤다.' 이러한 생각을 품은 이에겐 원한이 가라앉지 않으리라.
  4.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것을 훔쳤다.' 이러한 생각을 품지 않은 이에겐 원한이 가라 앉으리라.
  5. 세상에서 [품은]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고] 풀어지지 않으리니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리라. 아,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여!
  6.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어야할 존재다.]고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다. 사람이 만일 이것을 깨달으면 모든 싸움이 사라지리라.
  7.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보면서 살며, 오관의 욕구를 삭이지 못하고,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게으른데다 근면치 못한 사람은, 마치 바람이 약한 나무를 넘어뜨리 듯, 악마가 쉽게 정복한다.
  8. [더러운 것을] 더럽게 보면서 살며, 오관의 욕구를 잘 삭이면서 음식을 절제하며, 굳은 신념을 지니고, 근면 정진하는 이는 마치 바람이 산을 정복할 수 없듯이, 악마도 정복할 수 없다.
  9. 더러운 것을 버리지 못하면 가사(수도승의 옷)를 입으려 할지라도, 절제와 진실이 없기 때문에 가사를 입을 가치가 없으리라.
  10. 더러운 것을 버리고 온갖 계명을 지키고 절제와 진실을 지는 사람은 참으로 가사를 입을 자격이 있다.
  11. 만물의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이라 생각하고 만물의 본질을 본질이 아닌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릇된 생각에 서서 본질에 이르지 못하리라.
  12. 만물의 본질이 본질인 줄 알고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은 바른 생각에 서서 본질에 이르리라.
  13. 마치 허술하게 지붕을 이은 집에서 비가 새듯이, 수양을 쌓지 않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든다.
  14. 마치 지붕을 잘 덮인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 수양을 쌓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15. 몸쓸 짓을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슬퍼하고 저 세상에서 슬퍼하고 두곳에서 슬퍼한다. 자기의 더러운 행실을 보고, 그는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16.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기뻐하고 저 세상에서도기뻐하고 두 곳에서 기뻐한다. 자기의 깨끗한 행실을 보고, 그이는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
  17. 몹쓸 짓을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내세에서도 괴로워하고, 두 곳에서 괴로워 한다. '몹쓸 짓을 했다'하며 괴로워 하고 지옥에 떨어져 다시 괴로워 한다.
  18.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기뻐하고 내세에서도 기뻐하고 두 곳에서 기뻐한다. '착한 일을 했다'하고 기뻐하고 하늘나라 가서도 더욱 기뻐한다.
  19. 가령 많은 경전을 외울지라도 방종하여 실천하지 않는 자는 남의 소만 세고 있는 목자일 뿐 [참된] 수도자가 되지 못한다.
  20. 가령 적은 경전을 외울지라도 법을 따르고, 탐욕, 노여움, 헤매임을 버리고 바른 지혜가 있고 마음의 자유를 얻고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읽매이지 않는 이는 참된 수도자에 끼게 된다.
제 2 장 근면하라
  1. 게으르지 않음은 영원히 사는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게으르지 않은 이는 죽지 않겠지만, 게으른 이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2. 이 이치를 분명하게 알고 거스르지 않는 달인은 게으르지 않음을 기뻐하고, 성인의 경지를 즐기리라.
  3. 생각을 깊이 하고 참을성 있고 항상 힘써 애쓰는 어진 이는 가장 높은 자유와 행복이 있는 열반을 얻으리라.
  4. 애쓰고 깊이 생각하고 행실이 깨끗하고 신중하게 행하고 스스로 억누르고 법에 따라 사는 근면한 사람은 영광이 더욱 빛나리라.
  5. 애쓰고 부지런하고 깊은 자제로써 꾹 억누름으로 지혜가 있는 이는, 홍수 (번뇌)도 밀어낼 수 없는 섬을 쌓아야 하리.
  6. 어리석어 슬기 없는 이는 게으름에 빠지고, 슬기가 있는 이는 귀중한 재산을 지키듯 부지런함을 지킨다.
  7. 게으르지 말라. 쾌락을 가까이 말라. 정욕에 가까이 말라. 게으르지 않고 깊은 생각을 하는 이만 큰 안락을 얻으리라.
  8. 어진이가 부지런하여 게으름을 물리칠 때 지혜의 높은 탑에 오르고 근심을 떠나 근심하는 어르석은 무리를 내려다 본다. 마치 산에 오른이가 땅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 보듯
  9. 게으른 무리 가운데서 부지런하고 잠자는 무리 사이에 깨어 있는 어진 이는 빠른 말이 느린 말을 앞질러 달리듯이 나아간다.
  10. [마가반(제석천)] 신은 부지런함으로써 모든 신의 으뜸이 되었다. 부지런함은 찬미를 받고 게으름은 언제나 비난을 받는다.
  11. 부지런함을 즐기고 게으름을 두려워하는 수도자(비구)는 크고 작은 모든 속박을 불같이 태우면서 전진한다.
  12. 부지런함을 즐기고 게으름을 두려워하는 수도자는 열반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제 3 장 마음
  1. 마음은 불안하여 흔들리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렵다. 어진이는 마음을 곧게 지키기를 마치 활쟁이가 화살을 [곧게 만들듯이] 곧게 한다.
  2. 물속 제 고장에서 물밖으로 던져진 물고기 처럼 이 마음은 마왕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파닥거린다.
  3. 잡기 어렵고 경솔하여 욕정따라 헤매는 마음을 억제하기란 즐거운 일이다. 억제된 마음은 안락을 가져다 주리라.
  4. 몸시 알아보기 어렵고 또 아주 섬세하고 욕정에 따라 헤매는 마음을 슬기로운 이는 지켜야 하리라. 잘 지켜진 마음은 안락을 가져다 주리라.
  5. 멀리 홀로 가며 꼴도 없이 마음 속에 숨은 생각을 억제하는 동안 마귀의 굴레에서 벗어나리라.
  6. 마음이 불안하고 바른 법을 모르며 신념이 흔들리는 사람의 지혜는 완성을 이루지 못하리라.
  7. 마음에 번뇌가 없고, 생각이 흔들리지 않고 또 선악을 초월하고 깨어있는 사람에겐 두려움이 없으리라.
  8. 이 몸은 물항아리처럼 [깨지기 쉬운 줄] 알고 이 마음을 성고가처럼 굳건히 하고서 지혜를 무기로 가지고 악마와 싸우라. 싸워 얻은 것은 지키고 앞으로 전진하라.
  9. 아아, 이 몸은 곧 땅위에 누우리라 의식도 없이 쓸모 없는 나무토막처럼 버림을 받으리.
  10. 적이 적을 대하고 원수가 원수를 향하여 어떠한 [악]을 할지라도 몹쓸 악을 향한 마음은 더욱 큰 악을 사람에게 하리라.
  11. 어머니와 아버지, 어느 친척이 주는 선 보다도, 바른 도를 향한 마음은 우리에게 더 큰 선을 주리.
제 4 장 꽃
  1. 누가 이 세상과 염라계와 천상계를 정복할 것인가? 누구 훌륭하게 설법된 진리의 말씀을 모을 것인가? 마치 솜씨 좋은 이가 예쁜 꽃을 찾아 꾸미듯 할 것인가?
  2. [불교]의 수도자는 이 세상과 염라계와 천상계를 정복할 수 있다. 그 수도자는 훌륭하게 설법된 진리의 말씀을 모을 수 있다. 마치 솜씨 좋은 사람이 예쁜 꽃을 찾아 꾸미듯 하리.
  3. 이 몸은 눌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은 줄 깨달은 이는, 악마의 꽃화살(유혹)을 끊어 버리고 [지옥의] 염라왕과 만나지 않는 [세계에] 이르리라.
  4. 꽃(쾌락)을 꺽는 일에만 마음이 쏠려, 애욕에 묻힌 사람은 죽음의 신이 앗아간다. 마치 잠자는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 가듯.
  5. 꽃만을 꺾고 마음에 집착을 가지며 애욕에 지칠 줄 모르는 이는 죽음의 마귀가 정복하리라.
  6. 벌이 꽃과 향내와 빛깔을 다치지 않고, 단 꿀을 따가듯이 성자(무니)는 마을에서 탁발을 해야한다.
  7. 남의 잘못을 보지 말라. 남이 한 일, 하지 않은 일을 보지 말라. 내가 저지른 것(과실)과 하지 않은 것(게으름)만 보라.
  8. 사랑스럽고 색깔이 아름다울 지라도 향기가 없는 꽃처럼 실천이 따르지 않는 훌륭한 말은 효과가 없으리라.
  9. 사랑스럽고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 짙은 꽃처럼 실천이 따르는 훌륭한 말은 효과가 있으리라.
  10. 쌓아 올린 꽃 무더기에서 꽃 다발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하리라.
  11.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찬다라, 타가라, 발리카의 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착한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흘러가고 바른 사람은 모든 방향에 항기를 뿌리리라.
  12. 찬다라, 타가라, 푸른 연꽃, 밧시키이 따위 많은 향이 있을지라도 계의 향이 가장 뛰어난 것이다.
  13. 타가라나, 찬다나의 향기는 미미한 것이다. 게를 지키는 이의 향기는 더할 나위 없는 것으로써 신들에게까지도 번지어 간다.
  14. 계를 다 지키고, 부지런하고, 바른 지혜로 해탈한 사람은 마왕도 가까이 할 수 없다.
  15. 큰 길가에 버러진 쓰레기의 산더미 속에서도 향기 짙은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오르듯.
  16. 쓰레기처럼 눈먼 중생 가운데 있으면서 바로 깨친이의 제자는 예지로서 찬란하게 빛나리라.
제 5 장 바보
  1.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고, 지쳐있는 자에겐 지척도 천리다.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어르석은 자에게 윤회는 길다.
  2.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이를 만나 길을 갈 수 없거든 차라리 혼자서 길을 가라. 어리석은 자와는 길벗이 되지 말라.
  3. 어르석은 사람은 '이 아이는 내 아들이다' 또는 '내게는 재산이 있다'라고 생각하며서 번민한다. 벌써 자신조차 제것이 못되는데, 어찌 아들이나 재산을 제것이라 할 것인가.
  4. 어러석은 자가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알고 있다면, 그 만큼 어진 이인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
  5. 어리석은 자가 한 평생 어진 이를 섬기더라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치 숫가락이 국맛을 [모르는 것] 같으리.
  6. 지혜있는 이는 한 순간이나마 어진 이를 섬긴다면 곧 진리를 깨닫기를, 마치 혀가 국맛을 [알듯이] 깨달으리.
  7.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를 원수처럼 대하여 행동한다. 괴로운 결과를 부를 몹쓸 행실을 하면서.
  8. 행동한 뒤에 뉘우치거나, 눈물을 흘려 울면서 그 대가를 받는다. 이런 행실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9. 행동한 뒤에 뉘우치지도 않고 즐거워하고 반갑게 그 대가를 받게되는 행실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0. 어리석은 자는 악도 그 과보가 생기기 전에 그것을 꿀같이 달콤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악의과보가 생기면 그 때에야 그 괴로움을 맛본다.
  11. 어리석은 사람은 가령 몇달을 [쿠사] 풀을 놓아 [적은] 음식을 먹는 고행을 하더라도, 진리를 생각하는 사람의 16분의 1만큼도 값어치가 없다.
  12. 나쁜 행실을 해도 새로 짠 우유처럼 곧 굳어지지 않는다. 재로 덮인 불씨처럼 타면서 어리석은 자를 따른다.
  13. 어러석은 자에게 지혜가 생겨도 마침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지혜는] 도리어 그의 머리를 부수면서 그의 행운을 좀 먹는다.
  14. 어리석은 사람은 헛된 명성을 바란다. 수도자들 가운데는 웃자리를, 승단 안에서는 다스리는 권력을, 다른 집에 있어서는 공양을 바란다.
  15. 집에 있는 이나 집떠난 이나 이것을 한 것은 나라고 생각하라. 그들은 해야할 일이든 하지 말아야 할 일이든 무엇이나 내 마음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요, 욕심과 교만은 점점 커만 가리라.
  16. 하나는 이익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하나는 열반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수도승은 이치를 깨닫고 남의 존경을 기뻐하지 말라 외로운 길 걷기에 한결 같으라.
제 6장 어진 이
  1. 잘못과 죄를 가르쳐 주고 꾸짖는 슬기로운 이를 마난ㅆ으면 그와 사귀어라. 마치 감추어진 보배를 가르쳐주는 이를 대하듯하라. 그와 사귀면 이익이 있을 뿐 손해는 없으리니.
  2. 계를 지켜라, 가르쳐라. 그리고 부당한 것을 피하라. 선한 이를 사랑하고, 악한 이를 미워하리라.
  3.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말라. 저속한 사람과도 사귀지 말라. 착한 벗과 사귀고, 가장 훌륭한 사람과 사귀어라.
  4.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맑은 마음으로 잘자리라. 어진이는 언제나 성인들이 말씀한 진리를 즐긴다.
  5. 운하의 기사는 물을 끌어들이고, 활쟁이는 화살을 곧게 만든다. 목수는 나무를 곧게 다듬고 어진이는 자신을 제어한다.
  6. 굳은 바위가 바람에 끄떡 않는 것처럼, 어진이는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7. 깊은 못이 고요하고 맑은 것처럼, 어진이는 진리를 듣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8. 착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욕망을 버리고, 쾌락을 구하여 헛수고를 않는다. 어진이는 즐거움을 만나나 괴로움을 만나나 흔들리는기색이 없다.
  9. 나를 위하거나 남을 위해서 아들이나 재산이나 토지를 원하지 말라. 계명을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바른 사람이 되라.
  10. 사람들 가운데 피안에 이른 이는 아주 적다. 거의 이편 강가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11. 진리가 바로 전해졌을 때 그 이치를 따라간 사람은 피안에 이르리라. 생사의 세계는 몸시 넘기 어려운 것이다.
  12. 어진이는 악을 버리고 선을 닦아야 하리. 집을 나와 떠나고 외롭고 쾌락이 없는 곳으로.
  13. 묘방의 약을 구하라. 어진이는 욕망을 버리고 한푼도 가지지 말라. 마음의 더러움을 씻고 자신을 깨끗이 하라.
  14.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을 바르게 수양하고 집착을 끊은 다음 소유욕을 버리고 기뻐하며 번뇌를 다 없애어 빛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어간 것이다.
제 7 장 성인
  1. 속세의 나그넷길을 마치고 근심을 떠나 모든 면에서 자유를 얻어 모든 속박을 끊은 사람에겐 고뇌가 없다.
  2.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집 떠나고, 쉴 집도 반기지 않는다. 호수를 떠나는 백조처럼 그들은 저마다 집을 떠난다.
  3. 저축도 없고, 알맞게 먹고, 공과 무상과 자유를 얻은 이의 길은 마치 하늘을 나는 새의 길에 자취가 없듯이 정녕 따르기 힘들다.
  4. 모든 번뇌를 다 끊어버리고 먹을 것에 구애를 않고 공과 무상과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발 자취는 하늘을 나는 새의 발자취처럼 따르기 힘들다.
  5. 잘 길들인 말처럼 모든 감각이 잔잔하고 교만이나 번뇌를 끊어버린 사람은 신들조차 부러워 한다.
  6. 경건한 자는 대지와 같이 거스리지 않고 또 문지방 같이 깨끗한데, 흙탕이 없는 호수와 같다. 이런이에게 벌써 윤회는 없다.
  7. 바로 깨닿고 자유를 얻어 고요함을 얻은 사람은 마음은 고요에 돌아가고 말과 행동은 조용하다.
  8. 망령된 믿음 없이 절대를 깨닿고 윤회의 끈을 끊어버리고 유혹을 물리치고 욕망마져 버린 사람은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9. 마을이거나 숲속이거나 푹 패인 땅이거나 또 평지이거나, 예배할만한 이가 사는 곳이면 어딜지라도 즐거웁다.
  10. 숲속은 즐겁다. 세상사람들이 즐기지 않는 곳에서 탐욕을 떠난 이들은 즐거우리라. 그들은 감각의 쾌락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제 8 장 천
  1. 가령 쓸데없는 말 모아 천마디를 만들어도 들을 때 마음이 가라앉는 유익한 한마디 쪽이 뛰어난 말이니라.
  2. 가령 쓸모없는 귀절을 모아 천편의 시를 짓기보다 들으면 가라앉는 한 귀절의 시가 더 뛰어난 것이다.
  3. 쓸모없는 귀절로 된 백편의 시를 읊기보다,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한편의 싯귀가 뛰어난 것이다.
  4. 싸움터에서 백만인을 이기기 보다, 자기 하나를 이기는 이가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5. 자기를 이기는 일은 남을 이기는 일보다 뛰어난 것이다.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의 승리를 신도 귀신도 마왕도 또한 범천도 이런 이의 승리만은 꺾을 수 없다.
  6. 달마다 천금을 들여 백년동안 희생을 바치기 보다, 단 한순간이나마 잘 수양한 이를 공양하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7. 숲속에서 백년 동안 화신에게 제사 지내기 보다, 단 한순간이라도 잘 수행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8. 이 세상에서 복을 얻기 위해서 한 해 동안 희생을 바치고 제사를 드려도,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잘 수행한 사람을 공경하는 것보다 반의 반도 못하리라.
  9. 잘 공경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이 네가지 복이 더 는다. 곧 나이, 아름다움, 행운, 힘이다.
  10. 비록 백년을 살더라도 계명을 깨뜨리고 마음의 고요를 잃는다면 바로 행하며 마음의 고요를 가진이가 하루 사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1.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지혜가 없고 마음의 고요를 잃는다면 지혜가 있고 마음의 고요를 가진 사람이 단 하루를 사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2.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으면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사는 하루가 낫다.
  13.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낳고 죽는 이치를 모른다면 낳고 죽는 이치를 아는 이의 하루 사는 편이 더 뛰어난 것이다.
  14.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죽음이 없는 도를 모른다면 죽음이 없는 도(열반)을 아는 이가 하루를 사는 편이 더 뛰어난 것이다.
  15.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가장 높은 진리를 모른다면 가장 높은 진리를 아는 이가 하루를 사는 편이 더 뛰어난 것이다.
제 9 장 악
  1. 선한 일을 서둘러 행하고 악한 일에서는 마음을 멀리하라. 선한 일을 하는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악을 즐긴다.
  2. 사람이 만일 악을 했다면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라. 그 일을 즐겁게 여기지 말라. 악이 쌓는 것은 괴로움이다.
  3. 사람이 많일 선한 일을 했다면 늘 그것을 되풀이 하라. 그일을 즐겁게 여기라. 선이 쌓는 것은 즐거움이다.
  4. 악한자도 그 악의 열매가 맺히기 전에는 행복을 맛본다. 그러나 악행의 열매가 생겼을 때, 악한자는 재앙을 맛본다.
  5. 선한 자도 선의 열매가 맺기 전에는 몹쓸 괴로움을 맛본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생겼을 때, 선한자는 행복을 맛본다.
  6. '내게 업보가 오지 않으리라'고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운다.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쌓여서 악으로 가득 차리라.
  7. '내게 업보가 오지 않으리라'고 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운다. 슬기로운 이는 조금씩 쌓여서 선으로 가득 차리라.
  8. 동행이 적고 재물 많은 성인이 위험한 길을 피하듯이 모든 악행을 피해야 한다.
  9. 손에 상처가 없다면 독을 만질 수 있으리라. 상처 없는 자에게 독은 해를 주지 못한다. 악을 않는 이에게 악은 없다.
  10. 순진하고 때 없는 이를 해치고, 깨끗하고 더럽지 않은 이를 해친다면 악은 오히려 어리석은 자에게 떨어진다. 마치 맞바람에 던진 먼지가 되 날아 오듯이.
  11. 어떤 이는 모태안에 들어가고 악인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인은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이는 열반에 들어가고.
  12. 하늘이나 바다나 산속 동굴에 들어가도 악업의 갚음에서 벗어날 세계는 없으리라.
  13. 하늘이나 바다나 산속 동굴에 들어가도 거기 머물러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세계는 없으리라.
제 10 장 채찍
  1. 모두 채찍을 두려워하고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제몸에 견주어서 남을 죽이지 말라. 죽이게 하지 마라.
  2. 모두 채찍을 두려워하고 모두 삼을 사랑한다. 제몸에 견주어서 남을 죽이지 말라. 죽이게 하지 말라.
  3. 복락을 바라는 중생에게 채찍으로 해치는 자는 자기복락을 구하여 죽은 다음 복락을 얻지 못하리.
  4. 복락을 바라는 중생에게 채찍으로 해치지 않는 사람은 복락을 구하여 죽은 다음 행복을 얻으리.
  5. 거친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성난 말은 고통이다. 채찍은 오히려 나에게 돌아오리.
  6. 깨진 징 처럼 묵묵히 있는 사람은 벌써 열반을 얻은 것이다. 네겐 노여움이 없기 때문에.
  7.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목장으로 몰아 가듯, 늙음과 죽음은 중생의 목숨을 몰고 간다.
  8. 어리석은 자는 악을 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불속에서 타듯 제 행실로써 괴로워 하리.
  9. 죄없는 순진한 사람에게 채찍으로 해치는 자는 다음 열가지 중에서 한가지 갚음을 만나리라.
  10. 곧 심한 고통, 노쇠, 육체의 상처, 중병, 정신착란.
  11. 또는 왕이 내리는 재앙, 지독한 중상, 친척의 멸망, 재산의 파멸.
  12. 또 불이 그의 집을 태우니, 열 가지 다. 어리석은 자는 죽은 다음 지옥으로 떨어지리.
  13. 나체의 고행, 소라처럼 짠 상투도, 몸에 재를 바름도, 또 고요히 않음 따위 갖가지 고행도 의심을 끊지 못한 중생을 깨끗이 할 수 없다.
  14. 몸을 화려하게 꾸몄더라도 냉정하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제어하고, 자제하고 음욕을 끊고, 모든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이야말로 바라문이며, 수도자이며 수도승이다.
  15. 훌륭한 말이 채찍을 피하듯이 누가 겸손으로 자기 자신을 억제하겠는가?
  16. 채찍을 맞은 훌륭한 말처럼,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 믿음과 계행과 정진으로 정신통일과 진리의 식별로 밝은 지혜와 옳은 행동을 아울러 갖추고 묵상을 다하여 커다란 고통을 없이 하리라.
  17. 운하의 기사는 물을 끌어들이고 활쟁이는 화살을 곧게 만들고 목수는 나무를 깎아 다듬고 덕있는 이는 자신을 제어한다.
제 11 장 늙음
  1.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가?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이 세상은 항상 불타고 있는데, 당신들은 암흑에 쌓여있다. 왜 빛을 구하지 않는가?
  2. 보라, 이 꾸며놓은 형체, 이 몸은 합성된 상처 덩어리요. 언제나 앓고 욕심이 많고 견고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3. 이 육신은 늙어 시들고 병고의 주머니요, 깨지기 쉽다. 썩은 육체는 흩어지고 삶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난다.
  4. 가을에 버려진 표주박처럼 이 흰 뼈다귀를 보고 무슨 기쁨인들 있으랴!
  5. 뼈로 성곽을 이루고 삶과 피로 칠하여 졌다. 그속에 늙음과 죽음과 거짓이 도사리고 있다.
  6. 찬란하게 꾸인 임금의 수레도 닳아 없어지고 육신 또한 늙는다. 하지만 착한이의 교법이 시들지 않으니 착한이는 서로 교법을 말한다.
  7. 보고 들은게 적은 사람은 황소처럼 늙는다. 살은 찌지만 지혜는 자라지 않는다.
  8. 나는 이집(육체)을 지은 자를 구하여 찾지 못한 채 여러 생을 보냈으나 생존은 다 고통이었다.
  9. 집을 지은 이여! 이제 당신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다시 집을 짓지 않으리라. 기둥은 부러지고 서까래는 내려 앉았다. 마음은 만물을 떠나 애욕을 다 면할 수 있었다.
  10. 젊었을 때 도를 닦지 않고 재산을 모으지 못한 사람은 고기 없는 못에 사는 늙은 백로처럼 죽어가리라.
  11. 젊었을 때 도를 닦지 않고 재산을 모으지 못한 사람은 부러진 화살처럼 지난 일을 뉘우치며 한숨 지으리라.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반야심경 - 2024. 11. 9(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니라

사리자여! 색과 공이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눍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2016년 8월 10일 수요일

라호르의 불상 - 2016. 8. 11(목)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에 전시된 서기 100년경 간다라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 6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를 형상화함


2015년 10월 29일 목요일

불교 이해 - 2015. 10. 30(금)

부처님
부처님이란 말은 옛 인도말 붓다(Buddha)에서 온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불' 또는 '불타'라고 하기도 한다. 인도어 붓다는 진리를 깨닳은 이라는 의미이다. 부처님만 지니고 계시는 위대한 덕성을 '여래십호'라고 하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열가지 별명으로 설명해 왔다.
  1. 여래: 이와 같이 온 이. 부처님은 진리로 부터 온 이란 뜻이다.
  2. 응공: 마땅히 공양받을 만한 이
  3. 정변지: 바르고 보평타당하게 아는 이
  4. 명행족: 지혜와 실천을 겸비한 이
  5. 선서: 깨달음의 세계로 잘 간 이
  6. 세간해: 세상을 잘 아는 이
  7. 무상사: 더 없이 높은 분
  8. 조어장부: 사람들을 올바르게 길들이는 이
  9. 천인사: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 되신 분
  10. 불세존: 깨달은 어른
석가모니부처님
역사상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부처님으로서 약 2,600여년전 인도 동북부 지방 히말라야 기슭에 있던 작은 나라인 카필라바스투에서 아버지 숫도다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이름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싯달타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잉태하신 마야부인은 당시의 풍습대로 출산을 위해 친정인 콜리성을 찾아가던 길에 룸비니동산에서 아쇼카나무 꽃가지를 잡고 옆구리로 출산을 하였다. 갓 태어난 석가모니부처님은 사방으로 일곱걸음을 걸은 뒤에 "하늘 위와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온 세상이 모두 고통석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오당안지 三界皆苦吾當安之)라고 하셨다고 한다.

옆구리로 출산한 것은 왕족임을 뜻하며, 일곱 걸음을 내딛으신 것은 육도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 인도 최고 경전 '리그베다'에 2계급인 왕족은 신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생모인 마야부인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낳은지 이레만에 돌아가시고 석가모니부처님은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어진다. 석가모니부처님은 29세에 '사문유관'을 통해 생로병사의 근원적인 문제를 접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끝에 출가하기로 결심을 한다.

출가후 6년 동안 전통적 수행방법인 선정과 고행의 피나는 노력을 하였지만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35세 때 선정과 고행을 포기하고 네란자라는 강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있던 중 샛별이 뜨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이루었다. 석가모니란 뜻은 샤카족의 성자란 뜻이다.

깨달음을 이룬 직후 석가모니부처님은 깨달은 진리의 내용이 너무 심오하므로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가르침을 펴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곧 진리 전파에 평생을 바치기로 마음을 바꾸시고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니를 상대로 최초의 가르침을 펴셨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신 모습을 여덟가지로 표한 한 것을 '팔상성도'이다.
  1. 도솔내의: 석가모니부처님이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이 세상 구제를 위하여 오셨다. 천상의 도솔천에 살던 호명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낮잠을 자는 마야부인의 꿈속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2. 비람강생: 룸비니동산에서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신 것을 일컫는다. 비람은 룸비니를 뜻한다. 태어난 석가모니는 일곱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인지"라는 말을 했다.
  3. 사문유관: 태자 시절에 성문 밖으로 유람을 나갔다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깨닫고 출가를 결심한다.
  4. 유성출가: 한밤중에 카필라밧투성을 떠나 출가수행자가 되신 것을 뜻한다. 석가모니가 탄 말의 발굽을 들어주는 사천왕의 도움을 받아 성을 빠져나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5. 설산수도: 히말라야 산 속에 6년간 수도하신 것을 뜻한다. 석가모니는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나, 고행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고 중단한다. 목욕을 하고 우유죽을 공양받고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6. 수하항마: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진리를 깨닿고 부처님이 되신 것을 뜻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임박하자 마왕이 무리를 이끌고 수행을 방해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마군의 항복을 받아낼 때, 전생의 일곱부처가 나타나 석가모니의 승리를 증명한다. 반짝이는 새벽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7. 녹원전법: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니를 상대로 최초로 설법하신 것을 뜻한다. 노사나불이 설법하는 장면도 그려져 있다.
  8. 쌍림열반: 쿠시나가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것을 이야기 한다. 장례를 마치고 화장을 하지만, 불이 붙지 않는다. 가섭이 늦게 도착하자 스스로 타올랐고, 수만은 사리가 남겨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불기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해를 기준으로 불기를 헤아린다. 오늘날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불기는 남방불교의 전승을 인정하여 1956년 불멸 2500년을 기념하는 제1차 세계불교대회를 개최한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서기 1027년에 열반하셨다는 북방불교의 불기를 사용하였으나 1967년부터 공통 불기를 사용하고 있다.

삼신불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자연히 부처님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서 삼신설 사상이 나타났다. 삼신설이란 부처님은 법신, 보신, 화신의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1. 법신: 부처님의 그거는 깨달은 진리에 있으므로, 그 깨달은 진리 자체가 본질이다. 진리란 세상만물에 모두 깃들어 있으므로, 세상에 부처님이 아닌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처님, 즉 법신불을 비로자나부처님이라고 한다.
  2. 보신: 부처님은 서원이나 수행의 결과로서 부처님이 되신 것이므로 이와 같은 수행 또는 원력이 부처님의 본질이다. 보신불로는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부처님과 같은 분이 있다.
  3. 화신: 구원해야하는 중생의 모습으로 태어난 부처님을 가르킨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그 예이다.
비로자나부처님 (법신)
비로자나는 태양을 의미하는 옛 인도말인 '바이로차나'를 음역한 것이다. 태양이 두루 비추는 것을 비유하여 '변일제처' 또는 '광명변조'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밀교에서는 '대일여래'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법의 형상을 보여주는 부처다. 부처를 상징하는 오른손과 중생을 상징하는 왼손을 맞잡은 지혜의 주먹을 쥔 지권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화엄경' 등 경전의 교주인 법신불로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상징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오른손으로 왼손 집게손가락을 말아 쥔 지권인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이 사는 세간을 뜻한다. 지권인은 부처님과 중생,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둘이 아님을 뜻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화엄전, 비로전, 또는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노사나부처님 (보신)
공덕을 쌓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처다. 법을 설하는 설법인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화신)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나타는 부처다. 마군을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증명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영상전은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이다.

아미타부처님
아미타란 무수한 수명 혹은 광명이란 뜻의 옛 인도말 아미타유스, 아미타브하를 한역한 것이다. '아미타경'이나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등에 주로 설해지고 있는 부처님이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세자재왕불이라는 부처님 아래에 출가한 법장비구가 48대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을 쌓아 부처님이 되었다고 한다. 법장비구의 48대원은 부처님의 이름을 열번만 부르면 누구든지 극락에 태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을 비롯하여 중생구제를 위한 것들이다. 현재는 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면 도달할 수 있는 극락에서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부처님을 사찰에 모실 때는 보통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함께 모시며, 아미타부처님이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 극락전 등으로 불린다.

미륵부처님
미륵이란 사랑, 우정, 자애 등을 의미하는 옛 인도말 마이트레야를 음역한 것이다. 사랑, 우정, 자애를 의역하여 '자씨보살'이라고도 한다. 미륵부처님은 먼 훗날 이 땅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실 미래의 부처님으로 현재에는 도솔천에서 천인을 위해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륵부처님에 대한 신앙은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으로 나누어 나타난다. 상생신앙은 현재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길 바라는 아미타신앙과 흡사한 왕생신앙이고 하생신앙은 앞으로 이 땅에 나타나실 미륵부처님을 숭상하여 십선업을 닦으며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다. '미륵하생경'에 따르면 전륭성왕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미륵이 태어나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세 차례의 설법으로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여 이 땅에 용화세계를 건설한다고 한다. 미륵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용화전, 미륵전, 자씨전이라고 한다.

약사여래부처님
'약사여래본원경',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 등에서 설해지고 있는 이 부처님은 보살이었을 때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었다고 한다. 12가지 서원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온전한 몸을 갖게 할 수 있게 하거나, 나쁜 왕이나 강도 등으의 고난으로 부터 모든 중생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 모든 중생들의 배고픔을 면하여 안락하게 할 수 있을 것, 가난해서 의복이 없는 이들이 훌륭한 옷을 얻게 할 수 있을 것 등이 담겨 있다. 이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약사전이라고 하며 보통 일광보살과 함께 모시며 손에 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관세음보살
'법화경'에 의하면 항상 세간의 소리를 관찰하고 계신 보살이다. 갖가지 고난을 겪고 있는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그에 따라 33가지 응화신으로 나타나서 구원하신다고 한다.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이 보살은 사람이 죽어갈 때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나타나 극락세계로 인도한다고 하며, '화엄경'에서는 바다에서 재난을 당한 이들을 구원하는 분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관음전', '원통전', '대비전' 등으로 부른다.

문수보살
문수라는 이름은 만주슈리를 소리나는 대로 옮긴 문수사리를 줄인 것이다. 여러 대승경전에 두루 등장하여 주로 부처님의 지혜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분이다. 문수보살을 사찰에 모실 때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양 옆이나 비로자나부처님 양 옆에 모시기도 한다. 문수보살은 손에 칼을 들고 있거나 사자를 타고 있는 형상을 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번뇌를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칼이나 용맹과 위엄의 상징인 사자를 통해 지혜의 준엄한 성격을 암시한 것이다.

보현보살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향한 실천행의 의지 즉, 행원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부처님이나 비로자나부처님 양 옆에 모시기도 한다.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탄 경우가 많은 것은 행원이라는 성격을 반영한 것이다. 묵묵하지만 꾸준히 가는 코끼리를 통해서 보살도 실천의 올바른 자세를 일깨우는 것이다.

지장보살
지옥의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고 열반에 들겠다는 서원을 세움

석가모니부처님의 10대 제자
  1. 사리자: 사리불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리푸트라로 지혜가 특히 뛰어나 지혜제일이라 불리운다.
  2. 목련: 목건련이라 불기도 하며, 마하목갈라나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지옥에서 제도한 일화로 유명하다.
  3. 가섭: 마하카사파. 금욕적인 생활이 뛰어나 두타제일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교단의 후계자가 되어 경전의 결집을 주재했다.
  4. 아나율: 아니룻다. 수행을 너무 열심히하다 눈이 멀었다. 보지 않고도 아는 신통력을 얻어 천안제일이라고 한다.
  5. 수보리: 수부티. 연기설을 잘 이해했으므로 해공제일이라고 한다.
  6. 부루나: 푼나만타니풋타. 뛰어난 설법 덕분에 설법제일로 불린다.
  7. 가전연: 마하캇챠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어 설명하는데 제일 뛰어나 분별제일이라고 한다.
  8. 우바리: 우팔리. 계율을 잘 지켜 지계제일이라고 한다.
  9. 라후라: 라훌라. 석가모니부처님의 친아들로서 남 모르게 선행을 잘 하여 밀행제일이라고 한다.
  10. 아난: 아난다.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며 설법을 가장 많이 들어 다문제일이라고 한다.
한국의 삼보사찰
양산 통도사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양산 통도사는 부처님 몸에서 나온 사리와 가사가 모셔져 있는 불보사찰이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의 맑은 기운이 그대로 통한다 하여 통도라 이름지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법당 뒤에 있으므로 우리나라 불보종찰인 통도사 대웅전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

합천 해인사
신라시대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목판에 새겨놓은 고려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법보사찰이다. 해인이란 모든 사물의 그림자가 넓고 큰 바다에 거울처럼 두루 비치듯 부처님의 드넓은 지혜의 바다에 온갖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송광사
신라시대 혜린선사가 창건하였다는 순천 조계산의 송광사는 예로부터 덕높은 국사를 많이 배출하여 그 국사들의 영정을 모신 승보사찰이라 한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이후 진각, 청진, 진명국사 등 열여섯 분의 영정이 국사전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 뒤에는 종사가 설법하는 설법전, 즉 승보전이 있다.

오대보궁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 건물 가운데 하나를 적멸보궁이라 한다. 이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하는 전각이며,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낙을 누리고 있는 곳임을 상징한다. 따라서,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사리는 곧 법신불로서의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불사리를 모신 곳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곳으로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1.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2.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에 있는 적멸보궁
  3.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에 있는 적멸보궁
  4.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에 있는 적멸보궁
  5. 강원도 정선군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을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암사의 보궁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오대산의 보궁은 불사리가 안치된 곳이 알려져있지 않다.

기타
법화경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던 때, 다보탑이 솟아나 다보여래가 그 설법이 진리임을 증명한다.

영산회상도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불화

염화미소
마음이 서로 말없이 통하는 것을 일컫는다. 석가모니가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은데서 유래한다.

명부전
지장보살과 명부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한 전각. 사람이 죽은 뒤 생전에 지은 죄를 사후세계를 다스리는 10명의 왕, 시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 곳을 명부라고 한다.

- "절: 붓다의 세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2024. 5. 18(토) 일부 덧붙임

2015년 10월 17일 토요일

예불문(우리말)

다게 - 아침
저희 이제 청정수를 감로다 삼아 삼보님전 올리오니
자비로 받으소서 자비로 받으소서 대자비로 받으옵소서

오분향례 - 저녁
계향 정헹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구름 두루하여 시방세계 한량없는 삼보님전 공양합니다.

직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 스승이며 모든 중생 어버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 항상 계신 거룩하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 항상 계신 거룩하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 절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부촉받은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 아라한께 절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불법 전한 역대조사 천하종사 한량없는 선지식께 절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 항상 계신 거룩하신 스님들께 절하옵니다.

다함없는 삼보시여, 지희 예셩 받으시고, 가피력을 내리시어,
법계중생 모두 함께 성불 하여지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우리말)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인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니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은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편)

한글 의례문 '천수경'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구업을 청정케 하는 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편)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오방내외 신중을 편하게 모시는 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 도로 지미 사바하(3편)

개경게(開經偈, 경전을 펴는 게송)
위없이~ 심히깊은 미묘한법을
백천만겁 지난들~ 어찌만나리
제가이제 보고듣고 받아지니니
부처님의 진실한뜻 알아지이다.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법장을 여는 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3편)

천수천안 관음보살 광대하고 원만하며
걸림없는 대비심의 다라니를 청하옵니다.

자비로운 관세음께 절하옵나니   크신원력 원만상호 갖추시옵고
천손으로 중생들을 거두시오며   천눈으로 광명비춰 두루살피네.

진실하온 말씀중에 다라니펴고   함이없는 마음중에 자비심내어
온갖소원 지체없이 이뤄주시고   모든죄업 길이길이 없애주시네.

천룡들과 성현들이 옹호하시고   백천삼매 한순간에 이루어지니
이다라니 지닌몸은 광명당이요   이다라니 지닌마음 신통장이라
모든번뇌 씻어내고 고해를건너   보리도의 방편문을 얻게되오며
제가이제 지송하고 귀의하오니   온갖소원 마음따라 이뤄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일체법을 어서속히 알아지이다.
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지혜의눈 어서어서 얻어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모든중생 어서속히 건너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좋은방편 어서어서 얻어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지혜의배 어서속히 올라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고통바다 어서어서 건너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계정혜를 어서속히 얻어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열반언덕 어서어서 올라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무의집에 어서속히 들어지이다.
자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오니   진리의몸 어서어서 이뤄지이다.

칼산지옥 제가가면 칼산절로 깎여지고   화탕지옥 제가가면 화탕절로 사라지며
지옥세계 제가가면 지옥절로 없어지고   아귀세계 제가가면 아귀절로 배부르며
수라세계 제가가면 악한마음 선해지고   축생세계 제가가면 지혜절로 얻어지이다.

나무 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 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 천수보살마하살     나무 여의륜보살마하살
나무 대륜보살마하살     나무 관자재보살마하살
나무 청취보살마하살     나무 만월보할마하살
나무 수월보살마하살     나무 군다리보살마하살
나무 십일면보살마하살  나무 제대보살마하살
나무 본사아미타불(3편)

신묘장구 대다라니(시묘한 대다라니)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마라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다라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미마라 아마라 몰제예혜혜 로계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미사미 나사야 모호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미라호로 하례 바나마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나야 마낙 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니바 사나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서방찬(西方讚, 사방을 깨끗이 하는 찬)-독송은 하지 않음
동방에~ 물뿌리니 도량이맑고   남방에~ 물뿌리니 청량얻으며
서방에~ 물뿌리니 정토이루고   북방에~ 물뿌리니 평안해지네.

도량찬(道揚讚, 청정한 도량의 찬)-독송은 하지 않음
온도량이 청정하여 티끌없으니   삼보천룡 이도량에 강림하시네
제가이제 묘한진언 외우옵나니   대자대비 베푸시어 가호하소서

참회게(懺悔偈, 죄업을 뉘우치는 게송)-독송은 하지 않음
지난세월 제가지은 모든악업은   옛적부터 탐진치로 말미암아서
몸과말과 생각으로 지었사오니   제가이제 모든죄업 참회합니다.

참제업장십이존불(懺除業障十二尊佛, 열두 부처님을 칭명하여, 듣게 되면 업장이 소멸되는 가지참회법)-독송은 하지 않음
나무 참제업장 보승장불
보광왕 화렴조불
일체향화 자재력왕불
백억항하사 결정불
진위덕불
금강견장 소복괴산불
보광월전 묘음존왕불
환희장마니 보적불
무진향 승왕불
사자월불
환희장엄 주왕불
제보당마니 승광불

십악참회(十惡懺悔, 열 가지 악업을 참회함)-독송은 하지 않음
살생으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도둑질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사음으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거짓말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꾸민말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이간질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악한말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탐욕으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성냄으로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어리석어 지은죄업 참회합니다.

오랜세월 쌓은죄업 한생각에 없어지니   마른풀이 타버리듯 남김없이 사라지네.
죄의자성 본래없어 마음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사라지면 죄도함께 없어지네.
모든죄가 없어지고 마음조차 사라져서   죄와마음 공해지면 진실한~  참회라네

참회진언(懺悔眞言, 죄업을 뉘우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3편)

준제찬(準提讚, 준제주의 찬)-독송은 하지 않음
준제주는 모든공덕 보고이어라   고요한~  마음으로 항상외우면
이세상~  온갖재난 침범못하리   하늘이나 사람이나 모든중생이
부처님과 다름없는 복을받으리   이와같은 여의주를 지니는이는
결정코~  최상의법 이루오리라.  나무 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3편)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법계를 맑게하는 진언)
옴 람(3편)

호신진언(護身眞言, 몸을 보호하는 진언)
옴 치림(3편)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 관세음보살님의 본마음을 보여주는 미묘한 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메 훔(3편)

준제진언(准提眞言, 준제보살 진언)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3편)

준제발원(准提發願, 준제보살의 발원)-독송은 하지 않음
제가이제 준제주를 지송하오니   보리심을 발하오며 큰원세우고
선정지혜 어서속히 밝아지오며   모든공덕 남김없이 성취하옵고
수승한복 두루두루 장엄하오며   모든중생 깨달음을 이뤄지이다.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 부처님께 발하는 열 가지 원)
원하오니 삼악도를 길이여의고   탐진치~  삼독심을 속히끓으며
불법승~  삼보이름 항상듣고서   계정혜~  삼학도를 힘써닦으며
부처님을 따라서~  항상배우고   원컨대~  보리심에 항상머물며
결정코~  극락세계 가세태어나   아미타~  부처님을 친경하옵고
온세계~  모든국토 몸을나투어   모든중생 빠짐없이 건져지이다.

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 네 가지 큰 서원)
가없는~  중생을~  건지오리다.   끝없는~  번뇌를~  끊으오리다.
한없는~  법문을~  배우오리다.   위없는~  불도를~  이루오리다.

자성의~ 중생을~  건지오리다.   자성의~  번뇌를~  끊으오리다.
자성의~ 법문을~  배우오리다.   자성의~  불도를~  이루오리다.

제가 이제 삼보님께 귀명합니다.

시방세계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시방세계 가르침에 귀명합니다.
시방세계 스님들께 귀명합니다.

2014년 6월 28일 토요일

울진 불영사 - 2014. 6. 26(목)

울진 천축산에 자리잡은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서기 65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서쪽 산 등성이에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침으로 불영사라고 하였고, 1968년부터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산태극 수태극 형국의 길지에 자리잡은 불영사는 조선 숙종때 인현왕후 불사의 은덕을 기리는 원당과 아울러 황후에게 현몽하였다는 양성당선사를 비롯하여 전염병으로 급사한 현령 백극제가 부인 이씨의 극진한 기도공덕으로 환생하였다는 설화 등 수많은 불사공덕의 역사를 안고 있다.

이 사찰은 인고의 세월속에 수많은 전란과 화재로 크고 작은 중건, 중수를 거듭하여 왔으며, 대웅보전(보물 1201호), 응진전(보물 730호), 후불탱화(보물 1272호), 삼층석탑, 부도외 에도 대웅보전 기단을 받치고 있는 2기의 돌거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사찰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1201호)
불영사 대웅보전은 불영사의 중심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립 연도는 조선 영조 1년(서기 1725년)이다.
계단 좌우에는 돌 거북 한 쌍이 놓여 있다. 상반신만 노출되어 마치 대웅보전을 둘이서 짊어지고 버티고 있는 듯 하다.
사찰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이어서 그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의 짜임새나 각 부재의 조각도 깔끔하며 내부의 단청도 격조 높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불영사 삼층석탑
불영사 삼층석탑은 기단 위에 3층으로 된 탑신과 샹륜부까지 갖추고 있는 석탑이다. 다만 2층과 3층 지붕돌은 귀퉁이가 조금 깨어져 나갔다.
상, 하층 기단 면석의 양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과 그 중간에 안 기둥이 하나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받침은 4단이다. 2층 지붕 돌의 낙수면의 기울기가 1층이나 3층의 지붕돌의 그것과 약간 다르다.
탑의 높이는 3.21m이고, 양식으로 보아 신라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고려시대 초기의 탑으로 보인다.

불영사 영산회상도(보물 제1272호)
불영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부처가 영취산에서 설법을하는 장면을 조선 영조 11년(서기 1735년)에 그린 것이다. 18세기 이후에 유행하는 영산탱화 가운데 초기 시기의 것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이 시기의 영산탱화는 구도가 비슷한데, 이 그림은 보살들 중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강조한 것이 특이하다.
본존은 항마촉지인을 한 좌상이고 양 협시보살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둔 것은 항마촉지인 여래좌상 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림의 기록에 조성연대와 함께 이 탱화를 울진 서쪽의 천축산 불영사에 모신다고 하였다.

불영사 대웅전

불영사 응진전(보물 제730호)
불영사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중기에 지어졌다. 맞배지붕 건물로는 특이하게 건물 4며에 모두 공포를 배치하였다. 이로 보아 처음지었을 때는 팔작지붕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은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건물의 앞면 가운데는 출입을 위한 문을 달고 양쪽 협칸에는 벽을 두었는데 그 위쪽에 작은 살창을 달았다.
건물 일부에 조선 초기의 수법이 남아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건물은 1984년에 해체, 보수되었다. 이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선조 11년(서기 1578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영사 응진전

 
불영사 전경

2014년 6월 1일 일요일

부처의 밥상 - 2014. 6. 2(월)

1. 탁발: 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 가장 간단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과 아만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 당시부터 행하였다.

인도 유미죽

45년간 설법에 힘쓰던 부처는 80세 되던해 춘다의 공양을 드시고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머리는 북쪽으로 몸은 서쪽으로 누워 평온한 얼굴로 열반에 드셨다.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은 "네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였다. 진리는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음식에 의하여 유지되고 깨달음은 음식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금광명 최승왕경

스리랑카 캔디
인도에서 불교가 처음 전파된 스리랑카 마지막 왕조의 옛 수도이다. 여기있는 불치사는 스리랑카인이 가장 즐겨찾는 사원이다. 여기에는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진 법당이 있는데 하루 세번 개방된다.

스리랑카 우유

몰아고다 마하라자 사원
- 1세기에 지어짐
- 인류최초의 최초의 경전인 패업경(야자수 잎에 쓰인 최초의 불교 경전) 소장
   (가르침 중 하나: 놓아라 내려 놓아라 괴로운 그 마음 내려 놓아라.)

헌 누더기를 걸쳤어도 모든 일에 집착함이 없이 진실과 법에 따라 몸소 행하고 혼자서 고요히 생각하면 그가 곧 바라문(승려)이다.
- 법구경

미얀마 만달레이
2500여전 부처가 아난존자와 함께 찾아와 위대한 도시가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함

마하무니파고다(불교 3대 성지 중 하나)
지금도 부처에게 금박을 붙이고 있는(남자만 붙일 수 있음) 사원, 금박의 무게 12톤

신쀼의식
음력 보름 미얀마 전역에서 펼쳐지는 미성년의 남자들이 단기간(1주일 이상) 승가에 출가하는 의식이다. 출가한 남자들은 머리를 깍고 사원에서 생활하며 불경을 공부하고 스님 생활을 체험한다. 미얀마 사회에서는 남자들은 생전에 한번은 반드시 출가를 경험해야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마하간다용 수도원
스님들의 엄격한 교육의 장으로 유명, 맨발로 1,000여명이 탁발을 함

음식을 지혜롭게 절제하며 니르바나(열반)의 길을 가고 있는 그를 뉘 감히 쫓아갈 수 있단 말인가
- 법구경

2. 발우: 승려들의 정식 식사법으로 공양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모든 그릇을 씻어 그 물의 임부를 마시고 일부는 천수물이라 해서 다른 그릇에 모은다.

인도 보드가야: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성지
유미죽: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직전 수자타가 올린 유미죽을 먹음. 수자타가 올린 공양이 사찰음식의 시작이다.
부처의 마지막 공양: 불가촉천민인 춘다가 올린 공양

초조달마: 중국선불교의 시조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침

남방불교: 공양받는대로 먹음
선불교: 고기와 자극적 양념인 오신체를 먹지 않음

선농일치: 산에서 식량을 재배하고 자급자족함(중국 선불교의 사조대사인 도신스님이 500명의 제자의 식사문제를 고민하다 산에 올라 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발생함), 중국 폐불운동이후 산으로 들어온 절의 스님들이 민가로 탁발을 나가기 어려워 산에서 저수지를 만들고 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사찰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시작함. 낮에 일하고 밤에 수행하기 위하여 오후에 전혀 먹지 않은 남방불교와 달리 오후에 먹기 시작함. 사찰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스님이 멀리서 찾아온 이들에게 공양을 대접하기 시작함.

사조대사의 6제자 중에 신라법랑스님이 있음. 법랑스님이 선블교를 신라에 전파함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이 몸과 마음을 길러
바르고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 오관게(공양 전에 외우는 다섯 구의 게송)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

발우: 부처가 깨달은 후 첫 공양을 올릴 때 사천왕이 각각 발우를 올린데서 비롯됨

발우 후 천수물은 천장의 경전아래에 놓는다. 목구멍이 바늘구멍만한 아귀가 달게 먹는 것이 천수물이다.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법주사 - 2014. 5. 29(목)

법주사의 창건
법주사는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율사가 7년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 오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보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별연수사를 창건하고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진표율사가 그후 금산사와 부안 부사의방에 가서 머물 때 속리산에 설단 영심, 융종, 불타 등이 와서 진표율사에게서 법을 전수받는다. 그때 진표율사가 그들에게 "속리산에 가면 내가 길상초가 난 곳에 표시해 둔 곳이 있으니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 교법에 따라 인간 세상을 구제하고 후세에 유포하여라"하였고 한다. 이에 영심 스님 일행은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고 칭하고 처음으로 점찰법회를 열었다. 금산사를 중건한 진표율사가 미륵불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그 법을 받은 영심스님 등도 마찬가지로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세우고 미륵불을 조성했이리라 추정된다.
고려 인조때 까지도 절 이름을 속리사라고 불렀다는 점과 '동문선'에 속리사라는 제목 시가 실려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도 절 이름이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그리고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법주사의 중창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33년)에 법주사라 이름 붙여진 이후 법주사는 성덕왕 19년(서기 720년)에 중건되었으며 고려에 와서 태조 1년(918년)에 왕사인 즉통국사가 중건하였다. 그리고 문종때에는 여섯째 왕자인 도생승통이 중창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충청도 지방의 승병 본거지였던 법주사와 산내 암자가 모두 소실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으나 인조 4년(1626년)에 벽암각성선사가 나와 중창에 힘을 기울였다. 벽암선사는 보은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과 함께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찌른 인물이며 그 후 1624년부터 3년 동안 지금의 남한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법주사 사적이 최초로 쓰인 것은 1630년인데, 여기에 임진왜란 이전 조선 초기에 있었던 건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법주사
고려시대에 들어서 법주사에는 뛰어난 고승대덕들이 주석하면서 여러차례 중창이 거듭되었다. 문종(서기 1046년 ~ 1083년)의 여섯째 왕자였던 도생승통이 절의 주지를 지냈다. 문종의 넷째, 다섯째 아들이었던 대각국사 의천과 혜덕왕사 소현은 도생스님의 형이었다. 고려시대에 불교는 국교라고 할 만큼 국광과 백성들의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다. 왕실에서는 왕자가 출가할 경우 이를 대단한 영광으로 받아 들였고, 특히 문종은 세 아들을 출가시킬 만큼 신심이 돈독하였다. 도생스님의 행장은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투철한 법상종 승려였던 해덕왕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던 사실은 도생스님이 곧 법상종 승려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아가 도생스님이 법주사의 주지를 지냈다는 것은 절이 신라 이래의 법상종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는 사실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인조 때(서기 1122년~1146년) 김부식이 편찬한 "속리사점찰법회소", 총혜왕 3년(서기 1342년) "고려국속리산법주사 자정국존비명", 그리고 도생승통비 등이다. 이를 통해 먼저 인종 때까지는 법주사를 산 이름과 같이 속리사로 불렀고, 유학자 김부식이 왕명으로 점찰법회의 소문을 지을 만큼 사격이 높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종 때(서기 1259년~1274년)는 자정미수대사(서기 1240년~1324년)가 절에 주석하였다. 자정미수대사는 고려 중기의 유명한 법상종 승려였다. 일찍이 13세에 출가하여 장의사, 국령사, 대민천사, 동화사 등지에서 수행하였다. 법주사에 있을 때는 왕명으로 각종의 경전과 장소를 92권이나 찬술하였다. 충렬왕 7년(서기 1281년)에는 왕이 절에 행차하여 산호전에 참배하였고, 뒤이어 충숙왕도 절을 다녀갔다. 공민왕 12년(서기 1363년)에는 왕이 절에 들렀다가 양산 통도사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 사리탑은 지금 능인전 뒤쪽에 그대로 남아있다.

조선시대의 법주사
조선 초 세조 때(서기 1455년~1468년)는 신미 대사가 머물며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세조의 스승으로 큰 존경을 받던 신미스님은 이보다 앞선 세종 31년(서기 1449년) 12월에 속리산 내의 복천사를 중창하기도 하였다. 이를 기록한 "복천사중수보권문"이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타 없어진다. 부분적으로 중수를 계속하였으나 정유재란때 다시 절이 전부 불타버렸다. 선조 38년(1605년)부터 인조 4년(서기 1626년)에 걸쳐 사명대사 유정스님이 팔상전을 중건했다.
1624년 다시 중수가 시작되어 이듬해 불사를 마치고 "법주사사적기"를 편찬하였다. 그 뒤 벽암각성스님(서기 1575년~1660)이 황폐화된 절을 중창하였다. 벽암스님은 임진왜란때 서산대사에 버금가는 분이다. 병자호란을 맞아 구국의 일념으로 의승장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철종 2년(서기 1851년) 3월 영의정 권인돈이 힘을 기울여 국가적 규모의 중수가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법주사
1939년 미룩불상 조성이 시작되었다. 당시 주지 장석상 스님이 발원하고 전북 태인에 살던 김수곤이 시주하여 80척의 미륵상 조성이 시작되었으나 조각을 맡았던 김복진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희사로 1963년 3월에 재착수하여 1964년 완공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67년 금오태전스님(1869년~1968년)이 기울고 퇴락한 전각을 중수하였다. 당시 금오스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정열적으로 가람을 일궈나가면서 법주사의 선풍을 진작시켰다. 1974년 정부의 지원으로 가람의 전각 대부분을 보수하고 복원하였다. 1975년 현대불교의 산증인이었던 금오스님의 부도와 비를 세웠다. 1976년 주지 탄성스님이 대웅보전을 보수하고 범종각을 새로 지었다. 1990년 주지 월탄스님의 원력으로 청동미륵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으며, 그 좌대의 지하에 성보전시관인 용화관을 마련하였다. 1997년 선원과 후원불사가 완료되어 현대적 시설을 갖추었다. 2002년 청동미륵대불을 과거 진표율사께서 금동미륵대불을 모셨다는 기록에 의거 개금불사를 함으로써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게 된다. 2005년 현재 4년간의 해체, 복원불사를 통해 대웅보전이 예전의 위용을 되찾았다.

팔상전(국보 제55호)
우리나라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으로 사찰창건 당시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해지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없어진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서기 1624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1968년 팔상전 해체중수공사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팔상전 건립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전각 내부에는 사방 네 벽에 두폭씩의 팔상도(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가 모셔저 있으며, 그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신라 성덕왕 19년(서기 720년)에 조성된 것을 추정된다.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 석등으로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자가 디딤한 복련석은 8각 지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양련석 주위에는 이중으로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석연지(국보 제64호)
신라 성덕왕 제19년(서기 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치고 있다. 원래 이 석연지는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 때 그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으로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며 화강석으로 조각한 것이다. 높이는 1.95m, 둘레 6.65m이다.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이 안치되어있다. 중앙에 봉안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좌측에 안치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의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화신으로 나타나신 신 석가모니불상이다.

법주사대웅전소조삼불좌상(보물 제1360호)
인조 4년(서기 1626년)에 조성되었고, 영조 23년(서기 1747년)에 다시 금칠을 하였다.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776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가 다시 복원하였다. 전각 내부에는 앉은키 2.8m, 허리둘레 1.9m의 거대한 목조의 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자비가 넘치는 상호로 봉안되어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16호)
효종 6년(서기 1655년) 조성되었다.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이 불상은 머리에는 중앙에 화불을 모신 다음 화염보주로 호화롭게 꾸민 보관을 쓰고 있다. 배 부분에도 복갑(腹甲) 같은 둥근 꽃장식 판을 두르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장식성이 두드러진다. 불단 양옆에는 남해용왕과 남순동자(南巡童子)의 조각상을 배치하였다. 더구나 조선 말기에 그린 관음탱이 후불탱으로 걸려 있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네모난 얼굴에 두 눈을 아래로 내려뜨고 있어 인상이 근엄해 보인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가슴선까지 올리고 왼손은 배 높이에 둔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하고 있는데, 마치 실제 인물의 손을 대하듯 곡선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이 넘쳐난다. 두 손은 다른 보살상처럼 가냘프다기보다는 크고 굵은 손가락들의 움직임이 크다. 양쪽 어깨를 덮은 천의(天衣) 자락은 신체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부피감 있는 곡선미가 드러난다.

법주사세존사리탑
높이 3.5m인 이 탑은 공민왕 11년(서기 1362년)에 공민왕이 홍건적을 격파하고 법주사에 행차하여 통도사에 봉안되어 있던 석가모니 사리 한개를 이곳에 옮겨 봉안했다고 한다.

형식은 팔각원당형으로 기단부 위에 탑신을 얹고 그 위에 옥개석을 얹었으며, 정상부에 상륜을 장식하였다. 기단부는 상대, 중대, 하대로 구성되어있는데, 평면방형의 지대석 위에 평면 8각의 기단이 놓여있다.

2014년 5월 24일 토요일

적멸보궁 - 2014. 5. 25(일)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말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게 된다. 부처님 생존시는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수보리 아래로, 화엄경을 설파한 적멸도량임을 뜻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법신불로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적멸보궁에는 예불의 대상으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는 것이 다른 불전과의 차이점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 양산 통도사
  • 오대산 상원사
  • 설악산 봉정암
  • 사자산 법흥사
  • 태백산 정암사
이중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때 직접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를 방안한 곳으로 알려져있으며,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라고 한다.

김제 금산사 - 2014. 5. 25(일)

조선 성종 23년(서기 1492년)에 작성된 "금산사 5층 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부처님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에서 순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금산사 사적"에 의하면 금산사가 백제법왕 1년(서기 599)년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경덕왕때 수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던 진표율사는 27세 때 변산 부사의암에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간의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진표율사는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 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의 규모를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경덕왕 21년, 762년 ~ 혜공왕 2년, 766년)

금산사는 진표율사때 부터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영원한 진리의 빛 그 자체)를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이다. 비로자나불은 오른손으로 왼손의 검지를 감싸 쥔 지권인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이와 지, 중생과 부처,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원래 대웅대광명전이었다. 대웅대광명전으로 불리던 때에는 이곳에 법신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 등 삼신불만 봉안하였다고 한다. 정유재란 1597년 경내의 모든 전각이 소실된 후 인조 13년(서기 1635년)에 이르러 도량을 재건하였는데, 대웅대광명전과 극락전, 약사전에 봉안하고 있던 5여래 6보살을 다시 조상하여 모두 한자리에 봉안하고 현액을 대적광전으로 밖웠다. 1986년 원인모를 화재로 법당이 전소되어 보물 제476호 지정이 해제되었으나, 199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현재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서 부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그리고 약사불을 봉안하였다. 6대 보살은 왼쪽부터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이다.

금산사의 대적광전에는 특이하게 5여래 6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는 한국 불교의 특징인 통불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타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파에 치우침이 없어야하고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일찍이 체득했기 때문이다. 왼쪽 벽에는 1991년 주지 월주스님과 증명 월산 스님이 조성한 신중탱화를 봉안하였다.


미륵전(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어있다.

금산사 미륵전은 진표율사가 미륵장육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신라 혜공왕 2년(서기 766년)에 처음 건립하였다. 법당내에는 미륵불, 법화림보살, 그리고 대묘상보살 등 삼존상이 조상되어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때 전소되었으나 조선 인조 13년(서기 1635년)에 수문대사가 한국 유일의 삼층법당으로 재건한 것이다. 법당 외부 1층과 2층은 정면 5간, 측면 4간이고, 3층은 정면 3간 측면 2간인 팔작지붕 다포형식이며 법당내부는 층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통층이다. 건물중앙의 제일 높은 기둥은 하나가 아니라 몇개의 기둥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둥양식은 목조탑 양식에서 번안된 구조이다.

1층에는 "대자보전", 2층에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이라는 서로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금산사 미륵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오랜 풍우를 지내는 동안 건물의 목재가 썩고 건물이 기울어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에 걸쳐 문화제관리국 주관으로 건물을 전면해체보수하였으며 1999년에 다시 번와광사를 하였다.

법당 내부 지하에는 연대미상의 철제연화대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법당 내부에는 원래 철불이 모셔져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항간에는 이 연화대가 솥으로 알려져 있으며 솥을 만지는 모든 사람은 속세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미륵전의 터는 원래 용이 살고 있던 연못이었으나 어떤 고승의 가르침에 따라 참숯으로 연못을 메워 용을 쫒고 미륵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금산사 미륵전

미륵전에는 높이가 11.8m에 이르는 미륵불을 가운데 모셨고 왼쪽의 범화림 보살과 오른쪽 대묘상 보살을 협시하였다. 조선시대 수문대사가 복원할 때 소조 삼존불로 봉안한 것이 1943년 실화로 일부 소실 되었다.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미륵전의 내벽과 외벽에는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있다. 오른쪽 벽에는 고종 27년(서기 1890년)에 조성한 제석천룡탱화가 봉안되어있다.

대장전(보물 제827호)
대장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경을 목판에 새긴 경판을 보관하기 위하여 만든 전각이다. 보통 장경각이라고도 한다. 금산사 대장전은 보물 제827호로 지정되어있다. 삼면의 벽에는 10폭의 벽화가 걸려있다.

금산사 대장전은 미륵전을 장엄하는 정중 목조탑으로 미륵전과 함께 일찍이 건립되었다. 정유재란에 소실된 후 조선 인조 13년(서기 1635년)에 재건되었으며 1922년 미륵전 앞에서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현재 지붕위에 남아있는 복발과 보주 등은 조선 인조 이전의 목탑 잔영이며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봉안하고 있다.

이 건물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규모이지만 정중 목탑의 번형 건물로 주목되며 석가모니불 후불광배의 조각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명부전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고 한다. 조선 철종 8년(서기 1857년) 비구니 스님이 현재의 미륵전과 대적광전 사이에 재건한 것을 197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금산사 명부전에는 지장삼존인 지장보살, 무독귀왕, 도명존자를 봉안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왼손에 금강보륜을 쥐고 있다. 지장삼존의 좌우에는 시왕상 10구와 판관, 녹사, 인왕상, 동자상 각 2체가 명부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머리에 금강경을 이고 있는 분은 염라대왕이다.

원통전
관음보살이 "주원융통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고 해서 관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원통전이라고 한다. 관음전, 대비전(관음보살이 대자대비하신 분이기 때문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적멸보궁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말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이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금산사 적멸보궁은 방등계단에 참배하기 위하여 특별히 건립된 방등계단 예배전이다. 원래는 나한전으로 석가모니불, 제화가라보살, 미륵보살 그리고 석가모니불의 제자인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있었으나, 1998년 방등계단을 성역화할 때 다시 크게 개축한 것이다. 이 법당 뒤에 있는 방등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법당내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았으며, 그 기능이 부처님 진신사리 예배소이기 때문에 이름을 적멸보궁으로 바꾸었다.

금산사 적멸보궁

방등계단
수계법회를 거행할때 숙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와 칠증이 둘러앉아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이는 양산 통도사와 개성의 불일사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다.

* 삼사칠증: 구족계를 줄 때에 계화상, 갈마사, 교수사의 스승 세명과 증인으로 모신 7명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구족계: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할 계율 (비구에게는 250계, 비구니에게는 348계가 있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 정, 혜 삼학 가운데 계를 으뜸으로 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계단의 중앙에는 보물 제26호인 석종형 부도가 있다.

조선시대 김시습(1435~1493)이 이 절을 찾아 방등계단에 시 한편을 남겼다고 한다.

구름 기운 아물아물, 골 안은 널찍한데
엉킨 수풀이 깔린 돌에는 여울소리 들려오네
중천에 별들은 금찰(금산사)를 밝히는데
밤중에는 바람과 우레가 석단(방등계단)을 감싸 도는구나
낡은 짐대엔 이끼가 끼어 글자가 희미한데
마른 나무에 바름 스치니 저녁 추위가 생기누나
초제(객실)에서 하룻밤 자고 가니
연기 속 먼 종소리에 여운이 한가롭지 않다

방등계단 사리탑(보물 제26호)
방형의 상하 이중기단을 구비한 높이 2.57m의 석종형의 부처님 진신 사라탑이다. 기단은 대석, 면석, 간석으로 되어있고 상하의 기단 면석에는 불상과 신장상이 조각되어있고 하층기단 이면에는 난간을 돌렸던 흔적이 있다. 또한 석주에는 기이한 인물상이 새겨져 있으며 석난간 네 귀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탑신을 받치고 있는 판석 네 귀에는 사자의 머리만을 부각시켜 조상하였다. 탑신 받침 부분 주위에는 연관을 둘리고 있고 밑바닥의 평면은 범종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특히 밑 부분에는 범종의 하대와 같이 화문대를 조각하였다. 정상에는 9룡이 전각되어 있으며 그 위로 보주석을 올려 놓고 있다. 이와같은 석종형의 사리탑은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인도의 불탑 형식에서 연유된 것이다.

오층석탑(보물 제25호)
금산사 오층석탑은 보물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석탑은 높이가 7.2m로 기록에 따르면 9층이었다고 한다. 1971년 11월에 석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모악산금산사오층석탑중창기"가 발견된다. 중창기와 함께 금동관음상을 비롯한 여러 소불상이 발견되는데 이들은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나 경전을 봉안하여 법당 앞 중앙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금산사 오층석탑은 방등계단을 장엄하는 정중탑으로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중기단 위에 높이 7.2m의 5층 석탑이 우뚝 서 있어 방등계단을 더욱 성스럽게 장엄하고 있다.

탑의 구조는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형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기단이 협소하고 옥개석 추녀 끝이 살짝 들려 고려의 시대적 특징을 보여준다. 상륜부의 노반이 크고 넓으며 그 위에 특이한 복발이 있고 복발위에 보륜과 보주가 설치되어 있다.

1971년 해체 복원하였는데 과거부처님인 정광여래사리 2과와 석가모니불 사리 5과가 나와 복원과 동시에 다시 봉안하였으며 금동여래 8분 등 다른 유물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육각다층석탑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은 고려초의 석탑으로 봉천원 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현재의 높이는 2.18m이며 11층 탑으로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든 방형탑인데 비해 이 탑은 점판암의 육각다층석탑이다. 이색적인 각 층의 체감비례가 아름다우며 섬세한 조각기법이 두드러진다. 원래 이 탑은 각 층마다 탑신이 있었으며 육각의 모서리마다 풍경이 달려 장엄스러웠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층의 탑신과 11개층의 옥개석만 남아있다.


석련대
보물 제23호인 금산사 석련대는 높이 1.67m, 둘레가 10.3m인 유례가 찾아보기 힘든 대형 연화대좌로서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이 뛰어나다. 원래 이름은 석조연화대이다.

연화대 형식으로 조각한 불상의 좌대로 무려 높이가 1.52m, 둘레가 10m에 달하는 거대한 연화대이다. 연화대 전체가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나 어러개의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상, 중, 하의 3단 양식을 정연히 갖추고 있다. 하대석의 측면은 10각형이며 8개의 면에는 안상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화를 조각하였으며 2개 면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복련판을 각면에 따라 10판을 돌려 웅려하게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조각과 장식 이외에도 중대, 상대, 등에는 안상과 화문, 연판문 등을 장식적으로 의장법응로 조각하였다. 상대석 윗면 중앙부분에는 두 개의 방형 구명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좌대가 석불 입상을 세우는데 이용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좌대의 조각 수법이 통일신라시대의 양식과 유사하나 무질서한 안상의 배치와 연판내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초기 대략 10세기경의 석조물로 추정하고 있다.

노주(보물 제22호)
노주란 노반지주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탑의 일부인 이 노주가 왜 별도의 조성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기록에 보면 노주는 잘못된 명칭이고 광명대로서 미륵전 앞에서 미룩불에서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었다고 한다. 만약 이말이 맞다고 한다면 불을 밝히는 화사석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고려시대의조성기법을 간직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 보물 제22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석조 건조물은 그 용도를 알수 없는 유물이나 그 형태가 방형의 연화대처럼 조성된 특이한 석조물임에 착안하여 노주라고 부르고 있다.

석조 건조물의 구조는 상, 중, 하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마다 안상과 화형문 그리고 귀기와 앙련, 복련 등이 화려하고 다양하게 조각되어 있다. 특히 상대석 위에는 일반 석탑의 상륜부와 유사한 향식이 조각되어있는데, 상륜부가 원형이며 보주 사익는 간주 형식인 것이 매우 특이하다. 영봉형인 보주의 조상 기법으로 보아 고려초기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등(보물 제828호)
법당 앞을 밝히는 등불로 인등, 장명등이라고 한다. 이 석등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3.9m의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1922년 대장전을 이전할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 방형판석을 지대석으로 하여 하대는 원형인데 복련으로 장식하였다. 간석은 팔각형이며 각 모서리마다 선을 쳐서 우주인 듯이 강조하였다. 상대는 앙련으로 장식하였다. 화사석과 개석은 팔각형이며 개석 정상에는 원대를 두어 상륜부를 반들게 하였다.

대장전 앞에 있는 이 석등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각석등으로 보물 제828호로 지정되어있다. 사각형의 지대석위에 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간주석, 연화석, 화사석, 옥개석, 보개, 보주의 순서로 조성되어있다.


나한전
소승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서 의역하여 살적, 응공, 응진이라 한다. 살적은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극복했다는 뜻이며, 응공은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만하다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의미이다. 이 전각에는 사성제를 깊이 깨달아 일체의 무명과 애착을 여의고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경지에 이른 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한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5백 나한을 모신 오백나한전과 16나한을 모신 응진전으로 구별된다.

금산사 나한전은 원래 적멸보궁 자리에 있었는데, 1996년 방등계단을 성역화할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서 새로 지었다. 전각 내에는 옮기기 이전의 나한전에 봉안되어있던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제화가라보살 그리고 16나한상이 조상되어있고, 1986년 대적광전 화재때 전소된 오백나한상은 1996년에 새롭게 조상하여 봉안하였다.

금산사 나한전에는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문수, 보현보살을 봉안하였다. 또한, 석가여래의 제자 가운데 으뜸인 아난과 가섭을 모셨고, 16나한상과 2인의 시자상도 목조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소형의 오백나한상을 계단식 단을 마련하여 가득히 봉안하고 있다.

보제루
우리나라 사찰에서 누각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라고 한다. 잦은 외침에 승벽이 조직되고 사찰이 의승군의 결집장소가 되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서 누각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승병이 사라지면서 누각건물은 법회, 강설, 대중집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오늘 날에는 가람의 한 구성요소로서 자리잡고 있다.

당간지주(보물 제28호)
당간지주는 사찰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세울 때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석조물이다. 금산사 당간지주는 높이가 3.5m이며 양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 서있다. 기단석과 간대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양 지주에 각면에 장식된 조각기법이 현저하게 두드러지며 우리나라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당간지주

범종각
범종각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사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범종은 지옥에서 안갖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율법을 들려주기 위하여 하루 중 인시, 오시, 술시 등 모두 세번 친다. 장엄하게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들음으로써, 지옥 중생들은 누대 겁에 걸쳐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을 깊이 뉘우치고, 청정하고 순결한 본래 자신의 마음으로 보리심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몸은 비록 지옥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보리심을 발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옥에 머무르지 않고 삼계를 뛰어넘어 해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법고는 축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범종 다음으로 친다. 북을 치면서 대군이 진군하는 것과 같이 법고 소리를 들으면서 축생과 수행자들은 모든 사바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생명들을, 그리고 운판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법고 다음으로 차례로 친다. 목어는 간략히 목탁으로 만들어 법당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목어와 목탁을 치는데는 물고기가 언제나 눈을 뜨고 있듯이 수행자들에게 방일하지 말고 대승의 행원을 다하는 날까지 용맹스럽게 정진하라는 경책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창 선운사 - 2014. 5. 24(토)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김제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 2대 본사이다.)


창건
선운사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서기 577년) 고승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두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왕위를 내준 신라 진흥왕이 도솔산의 어느 굴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를 창건했는데, 이 절이 이후 선운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세력다툼을 벌이던 곳으로 이 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검단스님의 창건 설과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본래 선운사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로 연못을 메워가고 있는데, 마침 인근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고 한다.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하여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못이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세운 절이 바로 선운사이다. 검단스님이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에 머물면서 갈고 닦아 선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해마다 봄, 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이라고 불렀고, 마을 이름도 검단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웅보전
조선중기 건물로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있다.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 삼세불을 봉안하고 삼존 사이에는 근래에 조성된 보살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삼존은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왼쪽에 아미타불과 오른쪽에 약사불을 모셨다.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 14년)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회상도, 약사회상도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팔상전
석가모니의 행적 가운데 극적인 여덟가지의 행적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 탱화를 봉안하는 곳이다. 1706년의 중건때 봉안한 팔상 탱화가 있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현재 봉안된 팔상 탱화는 1900년에 새로 조성된 탱화 중 6점이 남아있다. 석가여래좌상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며, 본존 뒤의 후불 벽화 역시 1901년 조성된 것이다.

산신각
산신각은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전해 오던 토착신앙이 불교와 융합되어 산신 신앙으로 등장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신앙 형태이다. 선운사 산신각은 1614년 조성된 이후 여러차례 중수되었다.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인도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영산회상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제자, 16나한 또는 5백 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나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한다. 선운사 영산전은 원래 장육전이라 불렸다. 이는 내부에 봉안한 불상이 1장 6척이나 되는 큰 불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음전
선운사 관음전에는 보물 제279호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 좌상과 최근 조성된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 탱화, 그리고 오른쪽 벽에는 1991년에 조성한 신중탱화가 있다. 지장보살이 주존불이므로 지장전 또는 명부전이 되어야 하나 특이하게도 이 전각은 관음전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를 나타낸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분으로 지장보살에 기도하면 과거와 현재의 업보와 죄를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 선운사 명부전은 17세기에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을 봉안한 시왕전을 결합하였다고 한다.

만세루
현세의 복락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라는 말이다. 만세루는 법회 장소 또는 스님들의 강학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선운사 만세루는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로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아직도 700년이다 된 기둥이 남아있다.

선운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더 있다.

  •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보물 제1752호)
  •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
  •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
  •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2014년 5월 5일 월요일

마곡사석가모니불괘불탱 - 2014. 5. 6(화)



명칭: 마곡사석가모니불괘불탱
종목: 보물 제1260호
시대: 조선 숙종 13년(1687년)
재료: 삼베 바탕에 채색

석가모니불괘불탱에는 중앙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천자, 아수라, 용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가득히 그려져있다. 석가모니불은 용화수가지를 양 손에 받쳐들고 있는 모습으로 손이 다른 신체 부분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둥근 머리광배와 배 마용의 몸광배로 구분되는데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여러구를 그려 넣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머리광배 좌우에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그려져있고, 그 아래쪽 좌우로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6대 보살이 그려져있다. 또한, 10대 제자와 보향, 명월천자가 상단의 양쪽 끝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옆으로 아수라, 가루라, 용왕, 제석천, 범천, 천자, 벽지불(스승 없이 혼자 깨닳은 이) 등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아래 쪽으로는 사천왕 등을 그려 좌우대칭으로 화면을 가득 매우고 있다.

이 탱화에는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이란 석가의 존명과 함께 각 상들의 명칭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불화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마곡사 - 2014. 5. 5(월)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태화산에 위치한 조계종 제6교구본사이다.(동학사를 포함한 충청남도 70여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에 따르면,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서기 640년, 신라 선덕여왕 9년)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절을 완공한 후 설법을 했을 때, 사람들이 '삼(삼 마, 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마곡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고려 문종 이후 100여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고려 명종(1172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160만평)으로 중수했다고 한다. 당시 마곡사는 대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고 효종 1년(1650년) 주지인 각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모습을 되찾았으나 정조 6년(1782년)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정조 12년(1788년)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헌종 8년(1842년)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마곡사는 대웅보전(보물 제810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5층 석탑(보물 제799호)과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를 비롯하여 응진전, 명부전, 국사당, 대향각, 흥선루, 해탈문, 천왕문 등 부속건물이 있다. 마곡사에 보존되어 있는 주요 문화재로는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써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다. 여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 약사여래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 부처님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 부른다.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고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이라는 뜻이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1788년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있다.(부석사 무량수전과 같은 방식) 비로자나 부처님 뒤의 탱화(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으로 조선 숙종 13년(1687년) 그려진 것이다.

마곡사 영산전은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태화산 군왕대의 혈자리"로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산전은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 중수되어 현재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남아있다. (영산전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마곡사 영산전에는 한가운데 과거 7불을, 그 주변에 1000여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그 동안의 업을 참회하고 소멸을 기도하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다 구제할 것을 서원하신 보살으로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업보와 죄를 소멸할 수 있기에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마곡사 명부전은 1939년에 건립되었다. 중앙 불단에 지장보살을 좌우에 저승의 심판관인 사왕을 모셨다.

대광보전 앞에 위치한 오층석탑은 보물 제799호로 다보탑 혹은 금탑으로 불린다. 탑의 2층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 등이 조성되어 있다. 라마식 보탑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 방위의 개념으로 모든 방위를 포괄하는 상징이다.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영원히 거주한다는 불신상주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현재불에서 과거불과 미래불이라는 삼세불로의 확대는 시간을 횡으로 가르고 다시 공간적으로 투영되어 사방, 팔방, 시방에 현재불이 등장함으로서 현재의 다방불, 천불, 삼천불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모든 중생이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미 깨달은 상태에 있다는 내재불 사상으로 발전했다.)

마곡사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 곳으로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원래 응진전은 수도승의 신앙 형태를 나타내는 건물 중의 하나이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아난과 가섭을 모시고,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끝에 법천과 제석천을 함께 모신다. 16나한은 수행을 완성하여 성자의 지위에 올라 중생에게 복을 주고 바른 법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존재를 말한다. 이 건물은 1852년(철종 3년)에 다시 수리한 것으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마곡사 국사당은 절을 세운 스님이나 훌륭한 스님을 모신 곳으로 조사당이라고도 불리운다.

수선사, 매화당, 심검당, 염화당 등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이며, 홍성루는 강당 건물이다.


2011년 1월 31일 월요일

불교식 차례상 차리기


육류 대신 과자·과일, 술 대신 차(茶) 올려민족이 다함께 기뻐하는 명절이 다가왔지만 불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유교적 관례에 따라 차려진 차례상에 고기며 생선, 술이 불자들에게는 여간 불편하지 않다. 여기에 불교식 차례는 더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시도도 해보지 못한다. 하지만 불교식 차례는 검소하고, 절차도 간편하다. 불교식 차례상에 대해 알아보자.


의미
유교식 차례상과 불교식 차례상의 가장 큰 차이는 술과 육류 대신 차와 과일, 과자를 올린다는 점이다. ‘차례’(茶禮)라는 것은 ‘차(茶)를 올리는 의례’를 말하는 것으로 원래는 오늘날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술을 올리지 않고 간소했다고 한다.
차례의 의미를 보더라고 유교식 제례가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로하는 목적이라면, 불교의 제례는 조상의 업이 소멸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상차림
불교식 차례상의 맨 앞줄에는 과일과 과자를, 둘째 줄에는 나물과 식혜, 셋째 줄에 채소와 탕을, 넷째 줄에 송편과 전, 녹차,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줄에 밥과 국 을 진설한다.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먼저 위패를 쓴다. 남자의 경우에는 ‘선 엄부(아버님의경우) 전주(본관)후인 무상(불명) 000영가’ 라고 쓰고 여자의 경우에는 ‘선 자모(어머니 경우) 김해유인 보리심(불명) 000영가’ 와 같은 형식으로 쓰면 된다. 제사의 경우에는 위패와 사진을 모시고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하되, 오색나물 오색과일을 기본으로 한다. 떡과 나물, 전, 송편, 떡국 등을 준비하며 불교적인 차례상은 좌우에 국화등 현란하지 않은 꽃으로 장엄을 한다. 잔을 올리는 것은 녹차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차례의식(茶禮儀式)
1) 미타거불(彌陀擧佛): 부처님을 모시는 의식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큰절)
   나무 좌보처 관세음보살 (큰절)
   나무 우보처 대세지보살 (큰절)
2) 다게(茶偈): 차를 올리는 시
   시방삼세 부처님과 청정 미묘하신 법과 삼승사과의 해탈 얻으신 승가에 공양하오니 자비를 베푸사 감응하여 주옵소서 ①
3) 청혼(請魂): 조상님 영가를 모시는 의식
   금일 고조, 증조 할아버님과 할머님 영가시여 저희들이 모시는 추석(설) 차례에 강림하시어 감응하여 주시옵소서 (차를 올리고 재자들 모두 큰 절 2배) ②
4) 공양: 공양을 올리는 의식
   저희 자손들이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의 5분향을 공양하오니 자성의 대지혜 를 발하고 반야의 밝은 등을 켜서 3계의 어둠을 밝히사이다. 조주스님의 맑은 차를 드리오니 목마름이 아주 없어지이다. ③
    선계의 진품과일을 올리오니 맛보아 주소서
    진수를 올리오니 허기가 영원히 없어지이다.
    오늘 조상님 영가께 올린 모든 진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요 저희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올린것이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잠시 쉬면서 조상님을 추모하는 담소 시간을 가짐)
5) 보공양진언: 조상님과 다른 영가께 모두 공양되도록 하는 진언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3)
6) 보회향진언: 마무리하는 진언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마하 자가라바 훔 (3)
7) 발원: 원을 세우고 조상님에 대한 추모의 생각을 키움
   오늘 저희들이 올린 공양을 받으시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으시어 아미타부처님 의 국토인 극락세계에 태어나시고 저희 후손들이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올바른 삶을 영위하여 깨달음을 얻는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발원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10념) (큰절 2배후 헌식하고 그릇의 뚜껑을 닫고 위패를 사른다.


(열린선원카페 온누리(법현스님) 자료입니다)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어느 스님의 백팔 참회문

  1. 중생을 다 건지리라고 서원을 하고서도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허물을 참회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2. '번뇌를 다 끊으리라'고 서원을 하고서도 '나'의 이익만을 좇느라 세상의 번뇌를 키운 허물을 참회하며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3. '법문을 다 배우리라'고 서원을 하고서도 단 하나의 가르침조차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4. '불도를 다 이루리라'고 서원을 하고서도 오히려 부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허물을 참회하며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5. 세상 만물이 부처님의 몸이라는 걸 알면서도 만물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모시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6. 모든 생명에 부처님의 성품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면서도 나의 이웃을 부처님으로 여기지 않은 허물을 참회하며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7. 탐욕'으로 허물어지는 세상을 개탄하면서도 나의 탐욕을 다스리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8. '분노'가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걸 보면서도 작은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9.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혼란에 빠진 세상을 보면서도 나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 하나를 주고서 열 가지 생색을 내느라 오히려 탐심을 키운 허물을 참회하며 열 번째 절을 올립니다.
  11. 남의 잘못은 크게 보면서 나의 잘못은 살피려고도 하지 않은 허물을 참회하며 열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12. 작은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오히려 원망과 분노를 키운 허물을 참회하며 열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13. 작은 선행조차도 꾸준히 실천하지 못한 원인이 흐트러지고 게으른 내 마음에 있음을 알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열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14. 보살은 온갖 악으로 물든 바로 이 세상을 정토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곳을 벗어나 삼매를 구하려 한 허물을 참회하며 열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15. 어리석음을 고치는 것이 지혜임을 알면서도 어리석음을 그대로 둔 채 지혜를 구하려 한 허물을 참회하며 열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6. 순간순간 인생의 무상을 보면서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삶에 집착하여 바른 견해를 놓쳐버린 허물을 참회하며 열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7. 행동에 앞서 바른 생각으로 몸을 가다듬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열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18. 바른 말로 바른 행동의 길잡이를 삼지 않은 허물을 참회하며 열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19. 바른 행동이 바른 생각의 그릇임을 투철히 알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열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20.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생명과 세상에 대한 공경임을 망각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무 번째 절을 올립니다.
  21.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삶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진정한 닦음임을 사무치게 알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22.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에 기대고 빚지는 일임을 잊어버리고 산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23. 합법적인 방법이어도 남의 몫을 남겨 두지 않는 탐욕이야말로 도둑질임을 자각하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24. 바른 말을 해야 할 때 바른 말을 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큰 거짓말임을 깨닫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25. 몸의 즐거움에 탐착하여 술에 빠지고 감내해야 할 의무를 피하여 술잔 속에 숨어버린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26. 말로, 눈빛과 손짓으로, 표정과 행동으로, 온갖 바깥 모양을 꾸미면서 사특한 마음을 가리려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27. 꾸민 행동과 그럴듯한 말로 타인으로부터 존경받으려 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28.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고 먹을 때 먹고 자야 할 때 자지 않은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29. 거친 말로 이웃에 상처를 준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아홉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30. 강물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방생이고 강물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발임을 깨닫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 번째 절을 올립니다.
  31. 덜 먹고 덜 버리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생산임을 알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32. 신발 하나 가지런히 벗지 못하면서 사소한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33. 내 몫이 작아질까 봐 전전긍긍해 하면서 상생을 말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34. 오만을 자존심이라고 오해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35. 작은 선행에 거드름을 피워 약자를 초라하게 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36.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37.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태도에서부터 내 삶의 자존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가벼이 여긴 허물을 참회하며 서른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38. 성냄으로 인해 악연이 된 인연들에게 참회하며 서른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39. 모진 말로 인해 악연이 된 인연들에게 참회하며 서른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40. 진실한 글쓰기를 하기보다 진실하게 보이려는 글쓰기를 한 허물을 참회하며 마흔 번째 절을 올립니다.
  41. 내 눈으로 본 것만 옳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마흔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42. 내 귀로 들은 것만 옳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마흔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43.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남을 비방한 것을 참회하며 마흔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44. 배울 수 있도록 해 준 세상의 모든 인연들을 잊고 살아온 것을 참회하며 마흔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45. 나의 교만함으로 인해 악연이 된 모든 인연들에게 참회하며 마흔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46. 나의 인색함으로 인해 악연이 된 모든 인연들에게 참회하며 마흔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47. 당신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악연이 된 것을 참회하며 마흔일곱 번째 절합니다.
  48. 당신을 이간질함으로 인해 악연이 된 것을 참회하며 마흔여덟 번째 절합니다.
  49. 나로 하여금 아픔으로 환생한 모든 악연에게 참회하며 마흔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50. 당신을 비방함으로 인해 악연이 된 것을 참회하며 쉰 번째 절을 올립니다.

  51. 당신을 무시함으로 인해 악연이 된 것을 참회하며 쉰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52. 내 생각만 옳다는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쉰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53. 이 세상 이 곳에 머물 수 있게 해 준 모든 인연들의 귀중함을 잊고 살아 온 죄를 참회하며 쉰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54. 내 이웃과 주위에 있는 모든 인연들의 감사함을 잊고 살아 온 것을 참회하며 쉰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55. 나의 거짓말과 갖가지 위선을 참회하며 쉰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56. 나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참회하며 쉰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57.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쉰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58. 맑은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쉰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59.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쉰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자연에 순응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절을 올립니다.
  60. 가장 큰 재앙이 미움, 원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예순 번째 절을 올립니다.
  61. 가장 큰 힘이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예순 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62. 옳고 그름으로 분별하며 살아온 것을 참회하며 예순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63. ..며 예순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64. ..며 예순 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65. 조상님과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 온 것을 참회하며 예순 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악연의 씨가 되는 어리석은 생각을 참회하며 예순 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66. 오직 나만을 위하여 살아온 허물을 참회하며 예순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67. 마음을 쫓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며 예순 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68. 나를 강하게 만드는 시련에 감사하며 예순 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69. 시간이 흘러도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며 일흔 번째 절을 올립니다.
  70. 소리를 없애고 메아리를 구하려 한 것을 참회하며 일흔 한번째 절을 올립니다.
  71. 나 혼자 자란 것처럼 부모님께 함부로 한 것을 참회하며 일흔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72. 일초 전이 전생이고 일초 이후가 내생이라고 배웠지만 허망한 생각으로 금생을 놓쳐버릴 때가 있음을 참회하며 일흔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73.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한 것을 참회하며 일흔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74.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한 것을 참회하며 일흔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75. 아픔을 약으로 삼으라는 말씀에 일흔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76.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일흔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7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일흔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78. 번뇌의 바다에서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에 일흔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79. 남을 미워하면 힘든 것은 타인이 아니고 바로 ‘나’라는 것에 두손 모아 합장하며 여든 번째 절을 올립니다.
  80. 말과 행동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가르침에 여든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81. 지나간 일에 집착 하지 않고 미래를 근심 하지 말라는 말씀에 여든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82. 침묵 속에서 나를 발견 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여든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83.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함께한다는 말씀에 여든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84. 화를 낼만한 실체가 없다고 배웠음에도 순간순간 화를 참지 못한 것을 참회하며 여든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85.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여든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86. 내 이웃과 주위에 있는 모든 인연들의 감사함에 여든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87. 이 세상을 높고 낮음으로 분별하며 살아온 것을 참회하며 여든 여든 번째 절을 올립니다.
  88. 나만을 위하여 살아온 어리석음에 참회하며 여든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89. 이제, 저는 수행하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 번째 절을 올립니다.
  90. 저는 욕심 내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91. 저는 화내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92. 저는 교만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93. 저는 시기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94. 저는 모진 말을 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95. 저는 거짓말 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96. 저는 남을 비방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97. 저는 남을 무시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98. 저는 남을 원망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아흔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99. 저는 항상 맑고 밝은 마음 가지도록 발원하며 백번째 절을 올립니다.
  100. 저는 모든 생명이 평화롭기를 발원하며 백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1. 저는 이 세상에 전쟁이 없기를 발원하며 백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2. 저는 이 세상에 가난이 없기를 발원하며 백 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103. 저는 이 세상에 질병이 없기를 발원하며 백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4. 저는 보살행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발원하며 백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5. 저는 지혜가 자라나기를 발원하며 백여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6. 저는 선지식을 만날 수 있기를 발원하며 백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7. 시방삼세 모든 인연들에게 백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8. 끝없는 윤회에 감사하며 백아홉 번째 절을 올립니다.
  109. 오늘도 백팔배로 시작할 수 있음에 백열 번째 절을 올립니다.
  110. 말을 적게 해야 허물이 적다고 배웠습니다.
  11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겠습니다. 백열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112. 일어나서 물 한모금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백열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113. 일어나서 물 한모금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백열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114. 반찬을 가려 먹지 않겠습니다. 백열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115.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그저 백열여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116. 아기 예수님 나신 기쁨에 백열일곱번째 절을 올립니다.
  117. ?
  118. “... 참된성품 등지옵고 무명속에 뛰어들어 나고죽는 물결따라 빛과소리 물이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번뇌 쌓았으며” 백열아홉번째 절을 올립니다.
  119. “보고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지어 잘못된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남을 집착하고 그른길만 찾아다녀 여러생에 지은업장 크고작은 많은허물 삼보전에 원력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백스무번째 절을 올립니다.
  120.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 이세상의 명과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백스무한번째 절을 올립니다.
  121. “날적마다 좋은국토 밝은스승 만나오며 바른신심 굳게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눈이 총명하고 말과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안들고 청정범행 닦고닦아” 백스무두번째 절을 올립니다.
  122.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젊 잖 은 거동으로 모든생명 사랑하여 이내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삼재팔난 만나잖고 불법인연 구족하여” 백스무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123. “반야지혜 드러나고 보살마음 견고하여 제불정법 잘배워서 대승진리 깨달은뒤 육바라밀 행을닦아 아승지겁 뛰어넘고 곳곳마다 설법으로 천겁만겁 의심끊고” 백스무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124. "마군중을 항복받고 삼보를 뵙사올제 시방제불 섬기는일 잠깐인들 쉬오리까 온갖법문 다배워서 모두통달 하옵거든 복과지혜 함께늘어 무량중생 제도하며” 백스무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125. 오늘은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새벽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신 성도재일 입니다.
  126. “지옥아귀 나쁜곳엔 광명놓고 신통보여 내모양을 보는이나 내이름을 듣는이는 보리마음 모두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백스무일곱번째 절을 올립니다.
  127. “검수도산 날센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받던 저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새와 기는짐승 원수맺고 빚진이들 갖은고통 벗어나서 좋은복락 누려이다” 백스무여덟번째 절을 올립니다.
  128. “모진질병 돌적에는 약풀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되어 구제하되 여러중생 이익한일 한가진들 빼오리까” 백스무아홉번째 절을 올립니다.
  129. “천건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이나 이 세 상 권속들도 누구누구 할것없이 얽히었던 애정끊고 삼계고해 뛰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두성불 하사이다 ”
  130.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반드시 슬픔이 따른다고 합니다. 수레바퀴가 마부의 뒤를 따르듯이 말입니다. 백서른한번째 절을 올립니다.
  131.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마음은 모든 것에 앞선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백서른두번째 절을 올립니다
  132.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행복이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 마치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백서른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백팔참회문_
  133. “‘그는 나를 헐뜯었다. 그는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이겼다. 그는 나의 것을 훔쳤다.’ 이 같은 생각이 남아 있는 자에게는 미움은 가라앉지 않으리라.” 백서른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134.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이 세상)서 견디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모든 다툼은 곧 사라지리라.” 백서른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135. “지붕이 잘 덮인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 굳게 수련된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백서른여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