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 그 중에서도 문명사를 배우면서 동양과 서양의 발전과 쇠락에 대해서 자주 비교한다. 16세기 대항해시대 이전만 해도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이 두 나라가 차지하는 세계 경제의 비중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우리는 인쇄술 발명,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혁명, 산업혁명과 같이 서양에서 발생한 일련의 지식혁명이 그 이유라고 알고 있다. 인쇄술의 발명이 지식보급에 기여했고, 그렇게 보급된 지식이 대중의 지적 수준을 일깨워 사회의 문화수준을 높였고, 그 결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지적혁명 발생의 시작이 되는 인쇄술은 서양보다 동양이 앞서 발명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인쇄술의 발명의 효과가 증폭되어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 동양에서는 그 효과가 증폭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금속활자의 발명은 동양이 서양보다 앞섰다. 우리나라의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시기는 쿠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시기보다 거의 한 세기가 앞선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양은 금속활자의 발명은 빠르지만, 이것이 인쇄술로 연결되어 지식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로 금속활자의 기술적 한계, 비싼 종이의 가격,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던 사회체제 유지 목적의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간행물 등이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납 활자여서 인쇄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부적합했고, 종이 가격도 너무 비싸서 인쇄물이 경제적이지 못했으며, 당시 인쇄물들은 종교서적이거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대중적 지식확산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부족하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기술적으로 인쇄물 대량 생산에 적합한 진보된 것이더라도 동양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서양 역시 인쇄의 목적이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이었다.
서양의 인쇄술이 지식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의 인쇄술의 특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에 있었다. 서양에는 지식의 전수가 중요한 산업들이 있었던 반면에 동양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 단적인 예가 서양의 시계산업과 동양의 직물/도자기 산업이다. 중세부터 서양의 상인들은 동양의 군주들에게 시계를 뇌물로 주고 무역권 등 각종 이권을 확보했다. 동양 군주들이 탐낼 만한 산물이 없었던 서양의 상인들에게 서양의 시계산업은 매우 중요했다. 시계산업은 숙련된 장인이 필요하다. 또한, 시계 제작법은 말로 설명하거나 어깨넘어로 배우기 어렵다. 즉, 시계산업은 설계도가 필요한 산업인 것이다. 길드에서 장인은 도제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설계도를 읽을 수 있도록 먼저 글을 가르쳐야 했다. 반면, 동양의 주력 산업이었던 비단을 만들던 직물산업과 도자기 산업은 설계도 없이 어깨넘어로 배울 수 있는 산업이었다.
다시 말해 서양의 설계도가 필요한 산업들 때문에 사람들의 문맹율이 개선되었고, 문맹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지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쇄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이 지식혁명의 불꽃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기술적 발명, 그것만으로 사회적 혁신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꽃만으로 쓸모 있는 불을 일으키지 못하듯이, 사회적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명된 기술적 혁신은 잠시 일어난 불꽃처럼 곧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의료, 금융 등 기존 많은 산업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객실하나 없는 Airbnb가 세계 일류 호텔들을 보유한 기업들보다 그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Uber나 Lyft도 그렇다. 낡은 규제나 기존 산업의 이권에 가로막혀 이러한 기술의 수요를 사회적으로 창출해내지 못한다면, 금속활자가 우리 사회에서 반짝 나타나 번지지 못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술들도 우리 사회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우리는 인쇄술 발명,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혁명, 산업혁명과 같이 서양에서 발생한 일련의 지식혁명이 그 이유라고 알고 있다. 인쇄술의 발명이 지식보급에 기여했고, 그렇게 보급된 지식이 대중의 지적 수준을 일깨워 사회의 문화수준을 높였고, 그 결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지적혁명 발생의 시작이 되는 인쇄술은 서양보다 동양이 앞서 발명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인쇄술의 발명의 효과가 증폭되어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 동양에서는 그 효과가 증폭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금속활자의 발명은 동양이 서양보다 앞섰다. 우리나라의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시기는 쿠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시기보다 거의 한 세기가 앞선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양은 금속활자의 발명은 빠르지만, 이것이 인쇄술로 연결되어 지식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로 금속활자의 기술적 한계, 비싼 종이의 가격,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던 사회체제 유지 목적의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간행물 등이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납 활자여서 인쇄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부적합했고, 종이 가격도 너무 비싸서 인쇄물이 경제적이지 못했으며, 당시 인쇄물들은 종교서적이거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대중적 지식확산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부족하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기술적으로 인쇄물 대량 생산에 적합한 진보된 것이더라도 동양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서양 역시 인쇄의 목적이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이었다.
비엔나의 쿠텐베르크 동상
서양의 인쇄술이 지식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의 인쇄술의 특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에 있었다. 서양에는 지식의 전수가 중요한 산업들이 있었던 반면에 동양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 단적인 예가 서양의 시계산업과 동양의 직물/도자기 산업이다. 중세부터 서양의 상인들은 동양의 군주들에게 시계를 뇌물로 주고 무역권 등 각종 이권을 확보했다. 동양 군주들이 탐낼 만한 산물이 없었던 서양의 상인들에게 서양의 시계산업은 매우 중요했다. 시계산업은 숙련된 장인이 필요하다. 또한, 시계 제작법은 말로 설명하거나 어깨넘어로 배우기 어렵다. 즉, 시계산업은 설계도가 필요한 산업인 것이다. 길드에서 장인은 도제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설계도를 읽을 수 있도록 먼저 글을 가르쳐야 했다. 반면, 동양의 주력 산업이었던 비단을 만들던 직물산업과 도자기 산업은 설계도 없이 어깨넘어로 배울 수 있는 산업이었다.
다시 말해 서양의 설계도가 필요한 산업들 때문에 사람들의 문맹율이 개선되었고, 문맹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지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쇄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이 지식혁명의 불꽃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기술적 발명, 그것만으로 사회적 혁신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꽃만으로 쓸모 있는 불을 일으키지 못하듯이, 사회적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명된 기술적 혁신은 잠시 일어난 불꽃처럼 곧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의료, 금융 등 기존 많은 산업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객실하나 없는 Airbnb가 세계 일류 호텔들을 보유한 기업들보다 그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Uber나 Lyft도 그렇다. 낡은 규제나 기존 산업의 이권에 가로막혀 이러한 기술의 수요를 사회적으로 창출해내지 못한다면, 금속활자가 우리 사회에서 반짝 나타나 번지지 못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술들도 우리 사회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