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몇 년동안 직장에서 어이없는 일들을 겪었다. 대부분 알고 있던 회색코뿔소의 존재가 나로 인해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회색코뿔소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존재를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을 뜻한다.
모습을 드러낸 한 코뿔소는 나는 "빨간약, 파란약"으로 이름 붙였다. 이 이름은 영화 메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파란약을 먹고 메트릭스로 다시 돌아갈지, 빨간약을 먹고 메트릭스에 저항해 싸울 것인지 선택하는 장면을 연상해 지은 것이다. 검사원으로서 문제를 지적하면, 해야할 일이 많아진다. 이 해야할 일들 중에는 과거 해보지 못한, 어찌해야하는지 모르는 일들도 있을 수 있다. 반면, 검사원으로서 문제를 외면하면, 편해진다. 대다수가 문제를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외면하고 있는데, 나는 문제를 외쳤다. 방안에 회색 코뿔소가 있노라고. 그랬더니, 주위 외면하고 있던 사람들은 회색 코뿔소를 이야기하기 보단, 회색 코뿔소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나의 태도, 말투 등을 문제 삼았다.
다른 코뿔소는 나는 "사필귀정"이라 부른다. 나는 데이터를 고문해서 회색 코뿔소의 모습의 크기를 알아냈다. 그랬더니, 그 코뿔소를 잡아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코뿔소가 있음을 시사하는 데이터를 들이 밀었다. 코뿔소 잡이들과 그 잡이들을 감독해야하는 자들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작은 코뿔소를 한마리 잡고는 더 큰 코뿔소들은 놓아 주었다. 그런데 2년 후, 언론에서 큰 코뿔소의 윤곽을 보도해버린 것이었다.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왜 방안에 회색코뿔소들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존재를 외면할까? 왜 책임있는 자들은 문제의 핵심을 피할까? 나는 그 답의 일부를 책 "스킨 인더 게임"에서 찾았다.
Skin in the game. 살점을 건 게임이란 뜻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은 유대인에게 돈을 빌리며 자신의 살점을 담보로 잡혔다. 즉, 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핵심이익을 걸지 않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내가 처한 상황 역시 그랬다. 회색코뿔소를 잡아야하는 책임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감독해야하는 사람들이 회색코뿔소를 잡든 잡지 않든 자신의 이익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회색 코뿔소를 외면하면 잡을 것도 없고, 잡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적은 처들어 오지 않으니, 월급만 챙기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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