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폰지 사기의 유래 - 2018. 11. 3(토)

피라미드식 다단계 사기를 일컬어 폰지 사기라고 한다. 이 말은 카를로 폰지라는 사람이름에서 유래했다. 카를로 폰지는 1920년 미국 보스톤에서 자기에게 돈을 맡기면 45일 만에 50%의 수익을 보장한다면서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는 외국에서 채권을 싸게 사서 미국에서 높은 값에 팔아 그 차익을 투자자에게 수익으로 돌려준다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그가 체포될 때까지 모은 800만 달라 가운데 정말 채권으로 보유한 금액은 단 60여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모집한 투자금액의 대부분을 먼저 투자한 투자자에게 이자로 지급했던 것이다. 그의 사기는 투자금액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일시에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자 드러났다.

2018년 10월 31일 수요일

2차 아편전쟁에서 배우는 교훈 - 2018. 10. 31(수)

2차 아편전쟁때, 영프 연합군 2만 여명이 청나라의 수도 북경을 점령하고 이화원을 불태우고 약탈한다. 당시 청나라의 정치적 실세였던 서태후는 수도를 버리고 열하로 도피한다. 이때 함께 간 환관의 수만 수 천명에 이른다. (열하는 청 황제의 여름 궁전으로, 연암 박지원이 청 건륭제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조선의 사신단으로 다녀와서 열하일기를 쓰기도 했다. 박지원은 북경에서 열하까지 걸어서 5일이 걸렸다.)

이 사건을 단순히 당시 영프 연합군의 무력이 강하고 청나라 군대의 무력이 약했기에 당연하다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당시 청나라의 수도에는 수십 만의 청나라 군대가 있었고, 영프 연합군의 무기가 이러한 수적인 열세를 극복할 정도로 우세에 있지 않았다. 1860년 당시는 스페인의 피사로가 200명도 안되는 병사로 잉카제국을 점령하던 때처럼, 청나라 군인들은 영프 연합군에 비하여 비슷한 수준의 무기를 갖추고 있었고, 영프 연합군에 대하여 잉카 제국 사람들이 말을 탄 스페인 병사를 신의 화신이라고 여길만큼 무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청나라 군인들은 수적인 우위 이외에도 북경의 두터운 성벽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던저야 하는 핵심질문 중 하나는 영프 연합군이 어떻게 청나라 군대를 이기고 북경을 점령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영프 연합군의 사령관들은 어떻게 자신의 병사들에게 두터운 성벽 뒤에 자신의 군대와 비슷한 총과 대포를 갖춘 어머어마한 수의 청나라 군대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확신을 주고 진군시킬 수 있었냐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영프 연합군은 자신의 장교 앞에서 두려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명령을 따르는 척하고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진실의 전장에서는 정작 자신의 목숨만 챙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리더들에게 묻고 싶다. 평소 기분을 맞추어주며 굽신거리는지만,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취를 감추는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지, 아니면 평소 문제를 제기하고 불만을 표시하고 개선을 위해 여러 의견을 제시하여 불손해 보일지 모르지만, 문제의 순간에 자신의 안위보다는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지.


2018년 10월 6일 토요일

회사 워크숍 - 2018. 10. 3(목) ~ 10. 4(금)

단양으로 회사 워크숍을 다녀왔다. 단양의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를 회사 동료들과 즐겼다.









2018년 7월 8일 일요일

비엔나 출장 - 2018. 7. 8(토) ~ 7. 14(토)


이번 비엔나 출장에서는 이전에 묶던 숙소와 다른 곳에 묵게 되었다. 내가 비엔나에 출장을 갈 때면 즐겨 묶었던 Schweizer Pension은 70년간의 운영 끝에 올해 1월 문을 닫았다. 새로운 묶을 곳을 찾아야했다. 숙박비와 가격, 위치를 따져서 지하철 1호선 Praterstern역에 가까운 Zimmer im Herzen 이라는 아파트 객실을 골랐다. 덕분에 비엔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이번에 묶은 곳은 그야 말로 집주인의 남는 방을 임대하는 것이었다. 방 두개에 식당, 화장실, 욕실이 간소하게 있는 집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집주인이 도착시간을 물어왔다. 그러면서 자기는 여름휴가를 떠나니 자기 동생이 나를 맞이해줄 거라고 알려주었다. 내 비행기는 4시쯤 비엔나 공항에 내릴 예정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던지 나는 너무도 넉넉하게 저녁 8시쯤 도착할 예정이라고 대답하고는 오후 6시 30분쯤 1시간 3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건물 앞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당황해하며 약간 기다리니 건물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에게 Bernd를 찾으니, 20호 아니면 21호에 산다고 말하며 벨을 눌러주었다. 벨에 대답이 없자, 친절히 전화까지 해주었다. 전화를 받지 않자, 그 사람은 자기가 식품점에 갔다가 약 15분쯤 후에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내가 그대로 있으면 더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공짜 무선네트워크를 찾아 연걸해서 Airbnb에 접속해 Bernd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들을 다시 읽었다. 그의 집은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우리나라로 따지면 5층)에서 내려서 왼쪽으로 돌아서 복도 끝의 오른쪽 문이라고 그가 알려준 메시지가 있었다.

나는 이전에 이렇게 일반인이 자기 집의 남는 방에서 묶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정보들을 꼼꼼히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숙소의 대문

식료품 점에 간 오스트리아 사람이 열어준 대문 안으로 들어와 메시지에 적힌대로 따라가니 내가 묶을 곳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나를 들여보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올까 아니면 책을 읽으며 기다릴까를 고민하는데 19호에 사는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 여자가 나에게 먼저 누구를 찾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20호 Bernd 집에서 묶을 사람이며, 그 동생이 나를 맞으러 오기로 했는데 내가 너무 일찍와서 기다리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는 Bernd가 자기 전 남편이며 나쁜 관계로 인하여 그의 동생이 전화를 받을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걸어주었다.다행히, Bernd 동생 RU(루돌프)가 전화를 받았으며 몇 분내로 도착한다고 했다.


드디어 숙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RU는 집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전에 19호 여자가 어떻게 자기에게 전화를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물으며 자기와의 불편한 관계라며 나에게 불평했다. RU는 나에게 집 사용법을 설명해주었고, 






7월 9일 아침 산책











 

















































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