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오랜만에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 - 2019. 3. 24(일)


2019년 3월 3일 일요일

가치투자자 서준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 2019. 3. 3(일)

나는 항상 "가치투자를 하면, 부의 증가 외에도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투자 대상의 가격보다 그 내재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 트인다면, 그 다음에는 사물과 현상의 본질과 가치, 삶의 본빌과 가치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삶을 가치 측정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삶의 준칙이 생겨났고, 삶의 가치는 부나 직위 등 밖에서 매겨지는 평가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가지 소중한 경험을 하면서 50년을 사는 것이 10가지 경험을 하면서 100년을 사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부자, 정당하게 부를 키우고 그 일부를 남에게 베푸는 부자가 소유한 부의 가치는 일반적인 부의 가치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크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 채권쟁이 서준석의 다시 쓰는 주식 투자 교과서 중에서...

2019년 2월 27일 수요일

아내차 점화케이블 교체 - 2019. 2. 28(목)

오래된 아내 차가 엔진부조 현상이 생겼다. 어제 아내가 엔진이 덜덜덜 떨린다고 했다. 아내 말을 듣고 주차장에 내려가서 시동을 걸어보니 정말 차가 이전보다 많이 떨렸다. 오늘 아침에 수영장을 가면서 일부러 아내차를 몰고 가보았다. 차가 주행을 할 때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신호를 대기할 때 엔진이 떨려 핸들이 덜덜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승기업사에 가보니 점화케이블이 문제라고 진단해 주면서 점화플러그와 케이블을 모두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교체비용은 부품값이 13만원에 공임까지 하면 20마원가까이 될 거라고 했다.

이전에 점화플러그와 케이블을 교체해본 적이 있는 나는 수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월평동에 있는 우성사현대부품점에서 점화케이블을 사서 직접 교체했다. 들인 비용은 약 29,100원이다. 그랬더니, 엔진 부조현상이 사라졌다.

점화케이블을 교체할 때 필요한 공구는 아래 사진과 같다. 작은 공구가 엔진 덮개를 떼낼 때 필요한 공구다. 큰 공구는 점화플러그를 교체할 때 쓴다. 점화플러그를 교체한지 오래되어 생각이 안나서 스패너로 엔진 덮개의 너트를 풀다 포기하는 고생만 했다.


아래 사진은 점화케이블 연결 순서다. 아내차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아서 올린다. 나중에 또 필요한 때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성숙함이란 - 2019. 2. 23(토)

좀 느긋하자! 하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천천히 꾸준히.


2019년 2월 15일 금요일

2018년도 차량 운행 실적 - 2019. 2. 16(토)

내차
2019년 2월 16일을 기준으로 내 차의 운행기록은 64,321km였다. 2018년 2월 17일 기준 차량 운행기록이 58,244km 였으니 한해동안 나는 약 6,077km를 운전했다.

약 610L의 가솔린 연료를 사용했고(평균 연비: 약10km/l), 약 92만원 가량의 연료비를 지출한 샘이다. (연료비: 1,500원/l)

아내 차
2019년 2월 16일을 기준으로 아내 차의 운행기록은 106,041km였다. 2018년 2월 17일을 기준으로 아내 차의 운행기록은 99,538km 였으니, 한해동안 아내 차는 약 6,503km를 운행했다.

약 650L의 가솔린 연료를 사용했고(평균연비: 약 10km/l), 약 98만원 가량의 연료비를 지출한 샘이다. (연료비: 1,500원/l)

사회와 진보 - 2019. 2. 16(토)

우리는 역사, 그 중에서도 문명사를 배우면서 동양과 서양의 발전과 쇠락에 대해서 자주 비교한다.  16세기 대항해시대 이전만 해도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이 두 나라가 차지하는 세계 경제의 비중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우리는 인쇄술 발명,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혁명, 산업혁명과 같이 서양에서 발생한 일련의 지식혁명이 그 이유라고 알고 있다. 인쇄술의 발명이 지식보급에 기여했고, 그렇게 보급된 지식이 대중의 지적 수준을 일깨워 사회의 문화수준을 높였고, 그 결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지적혁명 발생의 시작이 되는 인쇄술은 서양보다 동양이 앞서 발명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인쇄술의 발명의 효과가 증폭되어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 동양에서는 그 효과가 증폭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금속활자의 발명은 동양이 서양보다 앞섰다. 우리나라의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시기는 쿠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시기보다 거의 한 세기가 앞선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양은 금속활자의 발명은 빠르지만, 이것이 인쇄술로 연결되어 지식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로 금속활자의 기술적 한계, 비싼 종이의 가격,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떤 사회체제 유지 목적의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간행물 등이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납 활자여서 인쇄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부적합했고, 종이 가격도 너무 비싸서 인쇄물이 경제적이지 못했으며, 당시 인쇄물들은 종교서적이거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대중적 지식확산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부족하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기술적으로 인쇄물 대량 생산에 적합한 진보된 것이더라도 동양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서양 역시 인쇄의 목적이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이었다.

서양의 인쇄술이 지식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의 인쇄술의 특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에 있었다. 서양에는 지식의 전수가 중요한 산업들이 있었던 반면에 동양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 단적인 예가 서양의 시계산업과 동양의 직물 산업과 도자기 산업이다. 중세부터 서양의 상인들은 동양의 군주들에게 시계를 뇌물로 주고 무역권 등 각종 이권을 확보했다. 동양 군주들이 탐낼 만한 산물이 없었던 서양의 상인들에게 서양의 시계산업은 매우 중요했다. 시계산업은 숙련된 장인이 필요하다. 또한, 시계 제작법은 말로 설명하거나 어깨넘어로 배우기 어렵다. 즉, 시계산업은 설계도가 필요한 산업인 것이다. 길드에서 장인은 도제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설계도를 읽을 수 있도록 먼저 글을 가르쳐야 했다. 반면, 동양의 주력 산업이었던 비단을 만들던 직물산업과 도자기 산업은 설계도 없이 어깨넘어로 배울 수 있는 산업이었다.

다시 말해 서양의 설계도가 필요한 산업들 때문에 사람들의 문맹율이 개선되었고, 문맹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지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쇄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이 지식혁명의 불꽃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기술적 발명, 그것만으로 사회적 혁신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꽃만으로 쓸모 있는 불을 일으키지 못하듯이, 사회적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명된 기술적 혁신은 잠시 일어난 불꽃처럼 곧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의료, 금융 등 기존 많은 산업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객실하나 없는 Airbnb가 세계 일류 호텔들을 보유한 기업들보다 그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Uber나 Lyft도 그렇다. 낡은 규제나 기존 산업의 이권에 가로막혀 이러한 기술의 수요를 사회적으로 창출해내지 못한다면, 금속활자가 우리 사회에서 반짝 나타나 번지지 못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술들도 우리 사회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2019년 2월 1일 금요일

나이와 건강 - 2019. 2. 2(토)

요즘 나이가 들었음을 부쩍 느낀다. 치아 문제 뿐만 아니라 몸의 다른 부분들도 이제 점점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발목이다. 왼쪽 발목에 아주 오래전 부터 약간의 통증이 있었다. 걷거나 뛰거나 한다고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발목 안쪽 복숭아뼈 아래를 누르면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쪽 발목은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예전에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다친 후유증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KT 네트워크 연구소에 다닐 때, 사내에 있는 잔디 축구장에서 매주 목요일 축구를 즐겨했다. 그때, 거구의 부장님께 발을 밟힌 적이 있는데, 발의 바깥쪽을 밟혔는데, 발목 안쪽에 멍이 들만큼 심했다. 나는 복숭아뼈 아래를 누르면 느껴지는 통증이 그때 부상의 후유증이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발목 통증의 진정한 원인을 최근 알게 되었다. 작년 11월 말에 울진에 검사를 갔는데, 거기서 술을 좀 많이 먹었다. 검사인지 행사인지 모를 만큼 검사하는 것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참관인들이 올때마다 저녁에는 식사와 함께 술잔이 오고 갔다. 술과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그 다음날 정도 속이 불편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검사를 마치고 복귀했는데 왼쪽 발목이 아팠다. 특정 부위를 만질 때만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던 예전과 다르게 걷기가 불편할 만큼 발목이 붓고 아팠다. 검사 때 혹시 발목을 접지른 것이 아닌지 기억을 더듬을 만큼 불편했다.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통풍이라고 했다. 평소 건강검진 때 혈중 요산수치가 약간 높게 나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증상이 없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나를 진료한 의사는 통풍은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며 6개월치 약을 처방해 주려고 하였다. 나는 의사에게 약 이외에 통풍을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고, 의사는 술과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식단을 바꾸었다. 내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중에 "목숨걸고 편식하다"라는 것이 있다. 병을 식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평소 탄수화물, 단백질 중심의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오이, 당근, 상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시금치, 콩나물, 버섯을 샀다. 오이와 파프리카는 생것을 썰고, 당근은 채로 만들어 볶았다. 콩나물, 시금치, 브로콜리, 버섯은 잘라서 대쳤다. 이렇게 준비해서 아침과 점심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밥을 먹을 때, 상추는 씻어서 손으로 뜯어서 같이 먹었다.

그렇게 작년 12월 올해 1월 이렇게 2개월간 먹었다. 그랬더니 몸무게가 3kg가량 줄었다. 그보다도 이전에 손으로 누르면 아프던 발목의 통증도 함께 사라졌다. 부상의 후유증이 아니라 높은 요산수치의 증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몸도 달래며 써야할 나이가 되었다. 약간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 또한 내가 모르던 나에 대해서 하나 더 알게된 것이다. 젊음이란 자신의 육체의 한계를 신경쓰지 않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때라는 말의 뜻이 새삼스럽다. 나는 그 시절을 지난 것이다.

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