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갔다.
나는 2014년 가을 대전에서 서울까지 산악자전거로 여행하고는 장거리용으로 자전거가 좀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도로용 자전거를 샀다. 다음 자전거 여행 목표지로 부산을 염두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둘째가 태어났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은 엄두도 못내다가 2018년 드디어 아내의 허락을 얻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여정으로 2014년 대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포함해서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완성했으며, 436km 정도를 여행해 최장거리 자전거 여행기록도 100km 가량 갱신했다.
- 총 거리: 481km
- 소요기간: 4월 7일(토) ~ 4월 10일(화) (3박 4일)
- 평균속도: 12.1km/h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부산까지
회사일로 힘들고 회사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있던 나는 생각도 정리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부산 자전거 여행을 이번에 감행하기로 했다. 봄꽃이 만발할 4월 두번째주 주말을 출발일로 정했다. 그리고, 도로용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위해 핸들바도 사서 장착하고 준비를 차근히 했다. 그런데, 4월 첫째주 대전에 벚꽃이 만발하고 비도 와서 꽃잎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볼때마다 좀더 빨리 출발했어야 하나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대전에서 부산까지 440km 가량을 잘하면 이틀, 길어야 사흘만에 완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난번 서울 여행에서 하루 170km를 여행했는데, 나는 도로용 자전거의 성능을 더하면 하루 200km 정도는 여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었다.
내가 계획한 여행경로는 먼저 대전에서 오천 자전거길을 따라 연풍까지, 연풍에서 새재 자전거길을 따라 문경, 문경에서 낙동강자전거길을 따라 부산까지 가는 것이었다.
- 대전->세종: 1번 국도
- 세종->연풍: 오천 자전거길 (오천: 미호천, 보강천, 성황천, 달천, 쌍천)
- 연풍->문경: 새재 자전거길
- 문경->부산: 낙동강 자전거길
출발일로 정한 4월 7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고 날이 밝아오는 6시 집을 나섰다. 봄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했지만 힘차게 출발했다. 2014년 서울 자전거 여행때 세종시에서 길을 잃어 합강공원에서 오천자전거길로 들어서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했다. 서쪽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 세종시와 오천 자전거길에 막들어섰을 때는 맞바람을 맞으며 힘겨웠으나 자전거길이 서서히 동쪽으로 방향이 잡혀가자 순풍이 되어 방해가 되지 않았다. 길을 갈 때마다 세번째 가는 오천 자전거길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모래재(97km 지점, 4. 7. 11:05)
지난번 왔을 때, 풍경에 감탄했던 괴강교는 벚꽃이 만발해 화려한 분홍 옷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이문재 시인은 농담이란 시에서 아름다운 것을 마주했을 때 생각나는 이가 있다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노래했다. 나는 괴강교를 올 때마다 꼭 한번 가족과 함께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까지 실현을 못했다. 이번까지 나는 세번째 괴강교를 오지만, 아직 가족과 함께 와보지는 못했다. 내년 봄 벚꽃이 필 때는 꼭 가족과 함께 괴강교에 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더 해본다.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했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는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
괴강교(105km 지점, 4. 7. 11:51)
할매 청국장집(116km 지점, 4.7. 13:02)
할매 청국장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려니 나른 했다. 누워서 낮잠을 한숨 자고 싶었으나, 문경 새재 자전거길의 가파른 산을 넘어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졸음을 쫒아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중심인 행촌교차로에 오후 두시경 도착했다. (2014년 여행때보다 한시간 가량을 단축했다.)
행촌교차로에서 부터의 여정길은 내가 이제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2014년도에는 행촌교차로에서 새재 자전거길을 따라 북쪽으로 길을 갔었고, 이번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남쪽으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행촌교차로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남쪽으로 길을 잡아 떠났다. 나는 나의 이전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시작한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행촌교차로(128km 지점, 4.7. 13:53)
행촌교차로에서 멀지 않아 새재 자전거길에서 가장 가파르다는 이화령 고개길이 시작되었다. 5km 남짓되는 이화령 고개길은 130km 가량을 달려온 나에게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엔 벅찼다. 자전거를 내려 오르막을 오르는데 몇몇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르막을 올라가기도 했다.
이화령 고개 휴게소 인증센터(133km 지점, 4. 7. 15:04)
힘겹게 오른 이화령 고개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 거기서 쉬면서 자전거 속도계를 충전시켜 놓고 있었는데, 문경 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속도계를 두고 온 것을 깨닿고 도로 고개길을 걸어 올라갔다. 백두대간 이화령 비석 앞의 사진은 다시 올라갈 때 찍은 사진이다. 뜻하지 않게 국토종주 자전거길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548m의 이화령을 두번이나 넘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이화령 비석(133km 지점, 4. 7. 15:18)
괴산군에서 이화령 넘어서는 바로 문경시였다. 문경시는 벚꽃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문경의 자전거길을 따라 나있는 소야 벚꽃길에는 시민들이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원래 문경시에서 자전거 여행 첫날 여정을 풀 계획이었으나, 아직은 해가 많이 남았기에 상주까지 가보기로 했다.
문경 소야벚꽃길(148km 지점, 4.7. 16:03)
낙동강 칠백리 표지석(181km 지점, 4.7. 18:06)
상주의 경천대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경천대에서 벌판을 따라 내가 자전거를 타고온 길을 바라보고 그 옆을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 있기에는 날이 빠르게 저물고 있어 마음이 급했다. 잘 곳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문경인지 상주인지 어디선가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화물차를 모시던 분이 자기가 운영하는 자전거 민박집 명함을 주셨지만, 거기까지는 무리로 보였다.
경천대에서(191km 지점, 4.7. 18:42)
경천대를 지나 바로 아래 있는 마을의 경천대모텔에서 첫날 여정을 풀기로 했다. 나는 첫날 아침 06시부터 17시까지 13시간 동안 191km를 자전거로 주파했다. 200km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했으나, 그것은 도로용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무리한 목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내일은 할머지 집에서 기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있는 경천대에서 함안 할머니 댁까지 거리를 보니 160km정도 되었다. 오늘 내가 190km정도를 왔으니 내일 저녁은 할머니 댁까지 자전거로 가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다. 나는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모텔 방에서 샤워를 하고 주인이 하는 식당에서 라면과 식은 밥을 저녁으로 먹고 잠을 잤다.
둘째날(4.8): 상주 경천대->대구 달성군 칸 호텔 (134km)
다음날 아침 일찍 차가운 물로 다시 샤워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옷만 입고 길을 나섰다. 날씨는 어제보다 더 쌀쌀했고 바람도 불어 추웠다. 길을 한 2km 정도 잘못 들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찾았다. 옷을 한겹 더 입고 길을 나섰다. 역시 둘째날은 예상대로 자전거 안장에 앉은 엉덩이가 타는 듯 아팠다. 다리는 뻐근했지만 엉덩이에 비하면 견딜만 했다. 하지만, 다리 역시 오르막을 박차고 오를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르막이 나오면 다리도 엉덩이도 모두 힘들었기에 그냥 내려서 걸었다.
상주보(194km 지점, 4.8. 6:32)
아침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파서는 먼 길을 가지 못하기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낙동강을 따라 나있는 자전거 길은 상업시설이 하나도 없는 촌락들만 간간히 볼 수 있어서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길을 가다 만난 어느 동네 허름한 시골가게(상주시 중동면 신암리 삼거리 매점)가 문을 열었기에 간식거리를 넉넉히 샀다. 간식거리를 사면서 할머니께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여쭈었더니 조금 가다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에 희망을 걸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란 곳이 알고보니 어제 명함을 받은 그 민박집(상주시 낙동면 물량리, 낙단보 (들꽃) 자전거 민박)이었다. 그 민박집 식당에서 어제 명함을 주신 그 분께 육계장을 아침으로 사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민박집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도 직접 자전거로 부산까지 세번정도 다녀오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4월 말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질 것을 대비해 어제는 이화령까지 자전거길에 붙여놓은 민박집 광고들을 점검하러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저녁에 묵을 숙소(합천군 창덕면 양진리, 적교장)도 소개해 주셨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합천까지는 평지로 길이 좋지만, 합천에서 부산까지는 넘어야하는 산이 두 개정도 있다고도 알려주셨다.
둘째날은 합천의 적교장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낙동강 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둘째날은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전거에 설치한 핸들바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핸들바를 잡고 자전거에서 엎드리면 체중이 엉덩이에서 분산되어 엉덩이 통증이 덜 했으며, 해가 뜨면서 거세지는 바람의 영향을 줄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 위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자전거를 탔다. 둘째날에는 주로 낙동강의 여러 보들을 구경했다. 보에 도착하면 쉬었고, 다음 보를 목표로 삼고 길을 갔다.
낙단보(211km 지점, 4.8. 08:24)
해가 떠오르자 점점 바람이 세졌다. 길은 평지였으나 마주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상주에서 구미, 대구 등 대도시로 감에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피곤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구미보(231km 지점, 4.8. 09:59)
칠곡보(262km 지점, 4. 8. 12:12)
둘째날 점심은 강정고령보 근처에서 먹었다. 아침을 육계장에 밥을 두 공기나 먹었거니와, 둘째날의 통증을 달래느라 자주 쉬면서 초코바와 영양갱을 먹어서 점심시간을 좀 지나서 점심을 먹었다. 강정고령보의 바로 옆에는 동네가 있었으며 거기에 식당이 여럿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강정고령보 근처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뿐 아니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강정고령보 옆 언덕을 내려가 칼국수 집(대구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우홍산네칼국수)에서 점심을 먹었다.
강정고령보(289km 지점, 4.8. 15:03)
점심을 먹으며 좀 쉬었던 터라 길이 좀 수월할 거라 생각했지만 더 세어진 바람때문에 앞으로 나가기 더 힘이 들었다. 바람이 자전거의 핸들바 사이를 통과하면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자전거가 울도록 바람이 세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달성보에 도착해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조금 쉬었다. 달성보에는 합천창녕보까지 낙동강 자전거길이 아니라 구지면을 가로지르는 우회로를 안내해 놓고 있었다. 30km가 넘는 자전거길이 아닌 지름길을 알게 되어 약간 힘이 났다. 안내문에는 지도 뿐 아니라 주요 교차로의 사진까지 안내되어 있었다. 나는 그 지름길로 들어서기 위한 주요 지명과 교차로 사진을 기억하기 위해 여러번 되뇌었다.
달성보(310km 지점, 4.8. 16:06)
달성군 유채꽃밭(310km 지점, 4.8. 16:42)
그런데 정작 지름길로 들어서야 하는 갈림길에 도착하자 공사가 한창이었다. 달성보에서의 안내되어 있던 도로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안내문에서 본 표지판의 사진과 다른 표지판을 만나자 여러 번 되뇌며 기억했던 지명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어 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지름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모리 방면이 아닌 구지 방면으로 갔어야 했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바탕으로 우회도로가 아닌 종주길인 자모리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갈림길을 선택하느라 우물쭈물 하는 동안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자모리 쪽으로 가는 것을 보며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그 길을 따라 진등산 입구(다람재)까지 가서야 갈림길을 잘못 선택한 것을 깨달았다. 오후 다섯시가 넘어 길어진 산 그림자를 보며 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길을 되돌아 나와 구지 방면으로 내려갔다.
대구 달성군 자전거 우회도로의 갈림길(공사전 모습)
구지면을 지나 달성2차 산업단지를 지나는데 이미 오후 여섯가 훌쩍 넘어있었다. 산업단지를 지나며 주위를 둘러보니 묶을 숙소가 몇군데 보였다. 합천창녕보까지는 10km정도 오늘의 목표로 정한 적교장 모텔까지는 20km가 남았는데 해는 곧 저물 것 같았다. 그래서 달성2차 산업단지내 숙소에서 쉬고 내일 다시 길을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근처 영빈궁반점에서 해물짬뽕을 저녁으로 먹었다. 그리고, 칸호텔이란 곳에서 쉬었다.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가 있으니 아픈 엉덩이며 다리가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셋째날(4.9): 대구 달성군 칸 호텔->본포교 (77km)
부산 자전거 여행 셋째날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어슴푸레 동녘이 밝아오는 새벽 여섯시쯤 길을 나섰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삼일만에 완주를 목표로 했었고, 도로용 자전거의 성능을 기대하며 이틀만에 완주도 슬쩍 넘보았다. 하지만, 여행의 삼일째 아침 나는 여전히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목표지점까지 140km를 남겨두고 있었다. 삼일째 완주도 빠듯한 것이다. 이틀동안 나를 잘 따라준 자전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삼일째 여정을 시작했다.
셋째날 여정을 시작하면서 창녕군 송곡리 무심사를 만났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에 위치한 이 절은 정말 풍경이 수려했다. 그 수려한 풍경때문에 이 절은 여러 방송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고 했다. 아직 절은 이른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지만 이번 자전거 여행을 하며 처음 만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려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무심사(341km 지점, 4.9. 06:31)
무심사를 뒤로하고 산길을 오르며 어제 적교장까지 가기로 한 계획을 수정해 달성군에서 쉬기로 한 것은 정말 잘 한 결정이었음을 느꼈다. 어제 여섯시가 넘은 시간에 적교장까지 20여 킬로를 한시간이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높은 언덕길과 깊은 산세를 보며 해가 진 어제 밤 이 길을 지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심사 산길을 오르며 산에 무언가를 채취하러 온 노부부 두분을 만났다. 두 분은 나에게 혼자냐고 물었다. 근처 동네에 사시는 분 같았으며 무리를 지어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을 꽤나 봐온 듯 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왜 혼자냐고 되물으셨다. 혼자 무섭지 않냐고도 물으셨다. 내가 무서워해야할 것이 있냐고 되묻자 여기 늑대가 있다고 하셨다. 웃으며 말씀하신 걸로 봐서 나를 놀리시는 듯 했다. 아침에 만난 유쾌한 노부부에게 작별을 인사하고 길을 계속 갔다.
무심사 산길을 내려오자 금방 합천창녕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합천창녕보에서 박진고개까지는 길이 정말 좋았다. 강을 따라 나 있는 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바람이 일지 않아 유쾌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합천창녕보(325km 지점, 4.9. 07:03)
합천창녕보에서 함안창녕보까지 50km가 넘는 길을 가다가 어제 목표로 정한 적교장 모텔을 아침 여덟시쯤 도착했다. 적교장 모텔 뒤에 있는 서울식당에서 찌게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창녕의 낙동강을 따라 시원하게 뚫려있는 길을 달리다 박진고개를 만났다. 높은 잔등산(252m) 속으로 나 있는 길을 올려다보며 가파른 고개를 어찌 넘나하는 걱정을 했다. 국토를 자전거로 종주한 많은 사람들이 박진고개를 넘으며 힘 들었던지 길 옆 시멘트 벽에 스스로를 격려하는 문구를 많이 새겼다. 그 글들을 보며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어제 기제사를 지낸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며 고개를 올랐다.
박진고개 오르막길 끝은 아래서 올려다 보며 걱정한 만큼 높지 않았다. 박진고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 길이 강과 함께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고난도 막상 겪어보면 걱정했던 만큼 힘든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박진고개를 오른 힘겨움을 박진고개가 되돌아보게 한 내가 굴러온 길과 물 한모금으로 떨쳐내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박진고개(370km 지점, 4.9. 09:24)
박진고개에서 내려다본 낙동강(370km 지점, 4.9. 09:24)
박진고개를 넘어오자 박진전쟁기념관으로 가는 표지판이 있었다. 박진전쟁이라는 전쟁이 있었나 궁금함이 생겼다. 나는 처음에 박진전쟁은 박진이라는 장군이 지휘한 전쟁이라 생각했다. 이 여행기를 쓰면서 박진전쟁이란 한국전쟁때 부산으로 가는 길목을 두고 국군과 미군이 북한군과 벌인 전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 아침을 먹은 낙단보 (들꽃) 민박집 아저씨가 부산까지 가파른 언덕 두개만 넘으면 길이 좋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제 무심사 산을 하나 넘었고 오늘 박진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가파른 언덕은 다 넘었고 좋은 길만 남았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하지만,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이 남아 있었다. 양아지 마을에서 시작해 신전리의 도초산을 따라 나있는 임도는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긴 산길이었다. 산을 넘어 다시 낙동강과 만나기 위해 길을 가면서 학계리 방아간에서 일요일에도 일을 하시는 아저씨에게 물을 얻어 먹었다.
다시 낙동강을 만나니 그 곳은 남지유채꽃밭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게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고 그 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아이들 수십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천국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남지유채꽃밭 가운데는 울긋불긋 튤립이 한창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에게 물으니 중학교 일학년이라고 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니 아이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건냈다.
남지유채밭(390km 지점, 4.9. 10:43)
천국같은 풍경을 한 남지유채밭을 지나 철교를 건너니 능가사가 있었다. 두번째 만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난지 얼마지내자 않아 어느덧 낙동강 하구 까지 100km도 남지 않았다.
능가사(390km 지점, 4.9. 10:56)
능가사에서 본 남지교(390km 지점, 4.9. 10:56)
낙동강 하구까지 98km 남은 지점(4.9. 11:09)
창녕함안보에 도착해 부모님께 전화하니 차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시겠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이 흘러가는 내 고향 창원까지 와서 부모님 댁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창원 본포교에서 부모님과 만나기로 했다. 본포교에서 차를 타고 나를 마중나온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둘째 강민이 까지 만나 자전거를 아버지 차에 싣고 셋째날 여정을 마쳤다.
창녕함안보(396km 지점, 4. 9. 11:41)
부모님을 만나 어릴 때 종종 들른 창원 북면의 마금산 온천 근처에서 두부와 비빔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부모님 댁으로 가서 쉬었다. 저녁으로 마산 어시장에 나가 회도 떠서 부모님과 거하게 먹었다.
네째날(4.10): 본포교->낙동강하구 (70km)
밀양 삼랑진(435km 지점, 4. 10. 08:49)
낙동강 하구까지 21km 남은 지점(4.10. 10:44)
낙동강 하구까지 1km 남은 지점(4.10. 12:28)
낙동강 하구둑(481km 지점, 4.10. 12:34)
대전으로 돌아가는 KTX 기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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