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천축산에 자리잡은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서기 65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서쪽 산 등성이에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침으로 불영사라고 하였고, 1968년부터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산태극 수태극 형국의 길지에 자리잡은 불영사는 조선 숙종때 인현왕후 불사의 은덕을 기리는 원당과 아울러 황후에게 현몽하였다는 양성당선사를 비롯하여 전염병으로 급사한 현령 백극제가 부인 이씨의 극진한 기도공덕으로 환생하였다는 설화 등 수많은 불사공덕의 역사를 안고 있다.
이 사찰은 인고의 세월속에 수많은 전란과 화재로 크고 작은 중건, 중수를 거듭하여 왔으며, 대웅보전(보물 1201호), 응진전(보물 730호), 후불탱화(보물 1272호), 삼층석탑, 부도외 에도 대웅보전 기단을 받치고 있는 2기의 돌거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사찰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1201호)
불영사 대웅보전은 불영사의 중심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립 연도는 조선 영조 1년(서기 1725년)이다.
계단 좌우에는 돌 거북 한 쌍이 놓여 있다. 상반신만 노출되어 마치 대웅보전을 둘이서 짊어지고 버티고 있는 듯 하다.
사찰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이어서 그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의 짜임새나 각 부재의 조각도 깔끔하며 내부의 단청도 격조 높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불영사 삼층석탑
불영사 삼층석탑은 기단 위에 3층으로 된 탑신과 샹륜부까지 갖추고 있는 석탑이다. 다만 2층과 3층 지붕돌은 귀퉁이가 조금 깨어져 나갔다.
상, 하층 기단 면석의 양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과 그 중간에 안 기둥이 하나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받침은 4단이다. 2층 지붕 돌의 낙수면의 기울기가 1층이나 3층의 지붕돌의 그것과 약간 다르다.
탑의 높이는 3.21m이고, 양식으로 보아 신라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고려시대 초기의 탑으로 보인다.
불영사 영산회상도(보물 제1272호)
불영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부처가 영취산에서 설법을하는 장면을 조선 영조 11년(서기 1735년)에 그린 것이다. 18세기 이후에 유행하는 영산탱화 가운데 초기 시기의 것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이 시기의 영산탱화는 구도가 비슷한데, 이 그림은 보살들 중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강조한 것이 특이하다.
본존은 항마촉지인을 한 좌상이고 양 협시보살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둔 것은 항마촉지인 여래좌상 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림의 기록에 조성연대와 함께 이 탱화를 울진 서쪽의 천축산 불영사에 모신다고 하였다.
불영사 대웅전
불영사 응진전(보물 제730호)
불영사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중기에 지어졌다. 맞배지붕 건물로는 특이하게 건물 4며에 모두 공포를 배치하였다. 이로 보아 처음지었을 때는 팔작지붕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은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건물의 앞면 가운데는 출입을 위한 문을 달고 양쪽 협칸에는 벽을 두었는데 그 위쪽에 작은 살창을 달았다.
건물 일부에 조선 초기의 수법이 남아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건물은 1984년에 해체, 보수되었다. 이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선조 11년(서기 1578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영사 응진전
불영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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