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0년 5월 21일 금요일

십자수

홀로 대전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나는 혼자서 노는데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는 공부하다가 지겨워지면 옆에 있는 친구, 선배, 후배 등 아무나 편한 이를 붙잡고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그런데, 대전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는 이렇게 쉴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몇명 되지도 않는 랩 사랍들은 일단 실험실에 나오는 시간부터가 각양각색이어서 일단 얼굴보는 것 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역할과 책임때문에 동료의 지겨움과 같은 사소한 것에 작은 시간이라해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 크고 만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매일 같은 방에서 얼굴보며 생활한다고 해도 대학친구들 만큼 친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게는 혼자 짧은 시간에 기분전환을 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하던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소일거리를 한가지 알고 있긴 했는데, 그것은 바로 게임이었다. 다 좋은데 게임은 한가지 좋지 않은 것이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당시 즐겨하던 게임은 바로 스타크래프트였는데, 혼자서 조용히 몇 게임하면서 기분을 전환하고 다시 하던 공부나 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고 시작은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그만 판이 커져버리곤 했다. 옆에 같이 있던 동료들이 게임을 구경하기 시작하다가 그만 실험실 매치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때로는 게임에 이기면 기분 좋게 그만할 수도 있는데 지기라도 하면 승부욕이 불타올라 이길 때까지 하게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던 일을 잊고 몰입하되 다시 하던 일로 회귀가 쉬운 게임 이외의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십자수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떤 계기로 십자수를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듯 생각하기에는 완벽한 것 같았다. 십자수가 게임처럼 이기고 지는 것이 있지도 않거지와 십자수가 주변 동료들에게 전염되어 판이 커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십자수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날 나는 부천 지하철 역 상가에서 처음으로 십자수 도구를 사서 십자수를 시작했다. 언젠가 광명에 올라온 참에 친구를 만났던 부천 지하철 역에 십자수 점이 있길래 첫 시작으로 쉬워보이는 열쇠고리 십자수를 샀다. (그 십자수 점에서 몇분 주인 아주머니로 부터 십자수 요령을 들은 것이 전부였지만 십자수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 열쇠고리는 커플용으로 한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각각 하나씩 두개의 열쇠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던 나는 커플용 열쇠고리를 만들어 가지고 있다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신부 열쇠고리"를 주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남자가 "신부 열쇠고리"를 갖고 여자가 "신랑 열쇠고리"를 갖는 거라고 한다. 아직도 왜 남자가 "신랑 열쇠고리"를 갖지 않고, 여자가 "신부 열쇠고리"를 갖는게 맞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의아해했다.)

그런데 웬걸! 나의 십자수 계획은 실험실에 가져다 놓고 두어시간마다 십분 이십분씩 기분 전환용이었는데, 막상 광명 집에 그날 밤에 그만 첫 땀을 떠버린 것이다. 그 첫 바느질에 그만 십자수에 빠져버렸다. 실험실에서 휴식으로 활용하자던 초심을 잊어버리고 실험실에 가져가 보지도 못했다. 광명에서 첫날, 그리고 대전으로 돌아와서 기숙사 방에서 열쇠고리 두개를 다 떠버렸다. 그리고, 나는 십자수를 기분 전환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을 단념하였다. (광명에서 내가 십자수를 하던 것을 본 여동생이 어머니에게 그걸 말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전화로 남자가 무슨 수를 놓냐며 내가 웃기다며 나를 놀리시기도 했다. 결혼한 지금 그때 떠 놓은 열쇠고리 십자수 하나를 아내에게 주려고 해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일 이후, 더 십자수를 몇 년간 하지 않았지만, 십자수에 관심은 계속 있었다. 길을 가다 십자수 점이 보이면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해바라기 밭에 풍차가 있는 십자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너무 이뻐 보여서 나도 꼭 그 십자수를 떠보리라고 다짐했다. (이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해바라기 밭의 풍차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신입회사원이 되어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게되면서 무료한 주말에 할 무엇인가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십자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예전에 내가 꼭 해보고자 다짐했던 그 해바라기 밭에 풍차 십자수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사서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도 참 끈질기다. 언젠가 한번 마음먹은 것을 결국에는 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십자수를 손놓고 있다가 크고 복잡한 십자수를 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래서 십자수 전문 온라인 쇼핑몰의 운영자에게 전화를 해서 나 같이 열쇠고리 하나 정도해본 실력으로도 할 수 있는지를 문의를 했었다. 그랬더니, 할 수 없을 거라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쇼핑몰 운영자에게 나는 한 2년 각오하고 해보면 어떻냐라고 되물었고, 그제서야 그러면 할 수 있을 거라면서 그제서야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그때가 2006년인가 2007년인가였다. 나는 그것을 아직도 하고 있다.

여름날 아침에 가끔 기분이 내키면 거실 탁상에 십자수를 펼쳐놓고 한 땀 한 땀 십자수에 몰입한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는 한 10년 걸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있는 십자수 (완성하면 위의 그림처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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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