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를 넘어서자 오래전에 감명 깊게 본 "재심"이라는 영화와 내용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심"은 2000년 8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을 찾아가는 박준영 변호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2017년 개봉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시 내가 회사에서 겪던 불합리한 일들과 사뭇 비슷하여,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는 어려운 길보다 대형 로펌에서 앞날이 보장된 편한 길을 택하라는 유혹에 대하여,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된 대사를 남겼다.
"수임료 많이 받으시죠. 전 재산 받아본 적 있습니까? 없으시죠? 제가 이겼습니다."
"소년들"이란 영화는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에서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짜 범인을 찾아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23년 11월 개봉한 영화이다. 이 두 영화는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유사하여, 영화를 보면서 인터넷에 검색해본 결과, 모두 박준형 변호사와 관련된 영화였다.
"재심"에서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반면, "소년들"에서는 경찰서 황준철 반장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영화 속에서, 그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로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남다른 성과는 내재만 조직 내부에서 승진 등에서는 배제가 된, 약간은 조직 부적응자로 그려졌다. 만년 반장으로 승진도 못하고 이 섬 저 섬의 파출소를 돌던 그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 경찰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을 알고 있다는 제보 전화였다. 그 사건을 맡은 그의 전임자는 사건을 해결한 공으로 특진까지 했다. 그런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조직에 똥칠을 하는 것인가, 조직을 살리는 것인가
그가 이미 끝난 사건에 대하여 재조사를 진행하자, 그의 상급자들은 조직에 똥칠을 하는 짓을 그만두라며 그를 만류한다. 하지만, 그는 이전 조사의 여러가지 이상한 점들을 알아차리고는 바로잡는 일이야 말로 조직을 살리는 것이라며 조사를 계속한다.
그는 그의 재조사 결과를 근거로 검찰까지 재검토를 의뢰하지만, 큰 좌절을 겪는다. 이전에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재검토를 다시 맡았다. 그리고, 그가 알지 못했던 제보자의 약물 남용, 제보자와 피제보자의 악연 등 제보자의 흠도 드러났다. 그렇게, 그가 제기한 이의는 기각되었고, 그는 다시 파출소로 좌천되었다.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
반도체 업계의 명사가 쓴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황반장은 편집광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지나친 소소한 문제에 집중했다. 글씨도 못쓰는 소년이 쓴 자백서, 열린 대문을 놔두고 담을 넘어 침입했다고 하는 믿을 수 없는 진술, 드라이버로 열기 어려운 현관문을 드라이버로 열었다는 진술 등을 토대로 그는 범인으로 몰린 소년들이 진범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동료들도 피해자도 믿어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범인으로 몰린 소년들도 험난한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선듯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좌절할지언정 포기 하지 않았다.
천망회회 -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아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피해자도 수감된 소년들이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깨달았다. 수감된 소년들도 어느덧 성장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두렵던 경찰의 위세를 극복할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진범들의 죄의 무게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정말 아이러니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피해자, 자신들이 짓지 않은 죄에 대한 벌을 받은 소년들, 그리고, 진범, 이들이 말하고 있는 진실을 경찰과 검찰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쏟아지는 진실들 앞에 법원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음을 인정했다. 억울한 소년들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자백한 진범들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은 받지 않았다. 과거 조작된 진실을 지키고자 하는 경찰과 검찰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천망회회라고 하기엔 아직 더 시간이 흘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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