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8년 10월 31일 수요일

2차 아편전쟁에서 배우는 교훈 - 2018. 10. 31(수)

2차 아편전쟁때, 영프 연합군 2만 여명이 청나라의 수도 북경을 점령하고 이화원을 불태우고 약탈한다. 당시 청나라의 정치적 실세였던 서태후는 수도를 버리고 열하로 도피한다. 이때 함께 간 환관의 수만 수 천명에 이른다. (열하는 청 황제의 여름 궁전으로, 연암 박지원이 청 건륭제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조선의 사신단으로 다녀와서 열하일기를 쓰기도 했다. 박지원은 북경에서 열하까지 걸어서 5일이 걸렸다.)

이 사건을 단순히 당시 영프 연합군의 무력이 강하고 청나라 군대의 무력이 약했기에 당연하다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당시 청나라의 수도에는 수십 만의 청나라 군대가 있었고, 영프 연합군의 무기가 이러한 수적인 열세를 극복할 정도로 우세에 있지 않았다. 1860년 당시는 스페인의 피사로가 200명도 안되는 병사로 잉카제국을 점령하던 때처럼, 청나라 군인들은 영프 연합군에 비하여 비슷한 수준의 무기를 갖추고 있었고, 영프 연합군에 대하여 잉카 제국 사람들이 말을 탄 스페인 병사를 신의 화신이라고 여길만큼 무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청나라 군인들은 수적인 우위 이외에도 북경의 두터운 성벽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던저야 하는 핵심질문 중 하나는 영프 연합군이 어떻게 청나라 군대를 이기고 북경을 점령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영프 연합군의 사령관들은 어떻게 자신의 병사들에게 두터운 성벽 뒤에 자신의 군대와 비슷한 총과 대포를 갖춘 어머어마한 수의 청나라 군대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확신을 주고 진군시킬 수 있었냐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영프 연합군은 자신의 장교 앞에서 두려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명령을 따르는 척하고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진실의 전장에서는 정작 자신의 목숨만 챙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리더들에게 묻고 싶다. 평소 기분을 맞추어주며 굽신거리는지만,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취를 감추는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지, 아니면 평소 문제를 제기하고 불만을 표시하고 개선을 위해 여러 의견을 제시하여 불손해 보일지 모르지만, 문제의 순간에 자신의 안위보다는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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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