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가의 북학의를 읽어보면 놀랍다.
"북학의"는 박재가가 1772년(정조 2년)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과 함께 북경에 다녀온 경험을 쓴 책이다. 박제가는 북경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수레를 이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놀랐다. 그래서, 북학의의 첫 부분에 수레로 물건을 나를 때의 편리함에 대해서 몇 장을 할애해서 썼다.
나는 18세기에 우리나라 실학자 중에 유명한 사람이 북경에 가서 보고 놀란 점이 수레라는 것에 놀랐다. 자명종도 아니고 범선도 아니고 수레라니! 18세기까지 우리나라는 수레를 일상적으로 쓰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좀 알아보았더니 진실은 이러했다.
우리나라는 흙 길에서 물건들을 실은 수레들이 지나다니면 길이 파이고 상해서 수레가 길로 다니는 것을 일찍이 금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레의 이용이 제한되었다.
사실 박제가는 북경에서 수레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수레가 일상적으로 다닐 수 있는 포장된 길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이 사실에 나는 좀 서글펐다.
"북학의"는 박재가가 1772년(정조 2년)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과 함께 북경에 다녀온 경험을 쓴 책이다. 박제가는 북경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수레를 이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놀랐다. 그래서, 북학의의 첫 부분에 수레로 물건을 나를 때의 편리함에 대해서 몇 장을 할애해서 썼다.
나는 18세기에 우리나라 실학자 중에 유명한 사람이 북경에 가서 보고 놀란 점이 수레라는 것에 놀랐다. 자명종도 아니고 범선도 아니고 수레라니! 18세기까지 우리나라는 수레를 일상적으로 쓰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좀 알아보았더니 진실은 이러했다.
우리나라는 흙 길에서 물건들을 실은 수레들이 지나다니면 길이 파이고 상해서 수레가 길로 다니는 것을 일찍이 금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레의 이용이 제한되었다.
사실 박제가는 북경에서 수레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수레가 일상적으로 다닐 수 있는 포장된 길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이 사실에 나는 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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