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23년 10월 3일 화요일

벌초 - 2023. 10. 3(화)

 벌초를 하고 예초기를 정비해서 원대복귀시켰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벌초에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참여한 것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조금 뜬금없다. 불똥이 엉뚱한데 튀었다고나 할까. 작년 추석때쯤인가 집안 어른들이 둘러 앉아서 앞으로 집안 대소사를 어떻게 해갈지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논의의 주요 쟁점은 다른 집안처럼 우리 집안도 집안 대소사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할머니며 삼촌들에게 집안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기 위해선 문중을 만들고 그 문중이 관리하는 재원이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래야 자질구레한 벌초며, 제사와 같은 집안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개개인이 부담하지 않아도 되며, 집안 구성원의 축하할 일에 축의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에 대한 대비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대해서 동의하니 방법을 강구해보자는 의견부터, 집안 대소사 할 수 있는 사람이 할만큼 하고 못하면 그만이니 불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몇년째 이 논의는 제자리 돌기를 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하다가, 한 삼촌이 문중을 만들어도 후손들이 문중일에 관심이 있어야 필요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때문에, 난데없이 내년부터 조카들도 벌초에 참여하라는 말이 나왔다. 조카가 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나만 벌초에 참여하게 되었다.

벌초에 참석한 유일한 조카

나는 인양농장에서 벌초용으로 쓰는 예초기를 싣고 함안까지 내려가서 벌초에 참여했다. 울산삼촌은 새벽부터 준비해서 제일 먼저 할머니댁에 도착해서 가장 일찍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실 벌초라는 일 보다도 명절 전아 아버지와 삼촌들이 모여서 조상님들의 위폐와 할아버지 산소를 벌초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일종의 가족회합에 가깝다. 이 소소한 행사의 기대로 울산 삼촌은 밤잠을 설쳐가며 아침 일찍 오신 것이다.

세상살이의 즐거움이란 참 별게 없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겠지만, 명절 전에 형제들과 모여서 풀깎는 일을 하는 것이 설레어 밤 잠을 설치는 것이다. 그 즐거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작업시간 보다 운전시간이 몇배 많지만 어찌 보람이 없다고 할 것인가.

이번 벌초에 참여하면서 나도 배움이 있었다.
먼저, 예초의 기술. 세종시에서 부터 먼길 달려온 내 예초기를 포함해서 이번 작업에 총 세 대의 예초기가 동원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두 예초기로 작업하는 울산삼촌과 막내삼촌의 기술이 거의 프로였다. 나도 예초기 오너로서 기술을 연마한 세월이 적지 않지만 내 실력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예초작업을 할 때, 돌에 날이 튀는 사고에 대비하여 접히는 안전날을 사용했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두 분 삼촌들은 양날이 빳빳하게 선 투박한 刀와 같은 예초날로 면도하듯 풀을 베어 내었다. 역시 경연장에 나와봐야 세상 넓은 줄을 깨우친다. 역시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았다.

둘째, 예초기 관리. 작업을 마치고 예초기를 차에 싣기 위해서 분리하는데, 문득 아버지가 예초기 샤프트에 구리스를 넣어주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가볍게 듣고 넘겼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작업 끝나고 집에 와서 유투브에 예초기 관리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예초기 관리에 대해서 또 한 수를 배웠다. 내 예초기는 운전이 끝나도 내부에 가스가 남아있어서 연료통을 분리한 후에 이를 연소시켜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고, 샤프트의 각 부위에 주기적으로 구리스를 발라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추석 연휴 첫날 귀성길에 오르기 전에 승담이와 대전 중앙시장까지 자전거로 가서 구리스를 사다가 예초기를 분해해서 발라 주었다. 역시, 무엇을 배우게 될지는 겪여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벌초하기 위해서 먼길 다녀온 예초기는 이번 주에야 자기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오늘 아침에 새로 산 안전날을 장착해서 시험 운전을 해보았다. 구리스를 발라주어서 인지, 새로운 안전날 때문인지 풀을 베어서 던지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역시!



댓글 없음:

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