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1년 2월 19일 토요일

겨울 속리산 - 2011. 2. 19(토)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였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났네

속리산이란 이름은 이 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왔던 이번 겨울을 집에서만 보낸 나에게 요청한 것도 아닌데 아내가 특별히 산행을 허락해 주었다. 사실 가깝기도 하고 가본지도 오래된 계룡산이나 한번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로부터 특별한 허락까지 얻으니 좀 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한번 가야지 생각만 하고 지금까지 미뤄왔던 속리산에 다녀올 마음을 먹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마음을 먹자마자 나는 실행에 옮겼다. 마침 얼마전에 눈까지 와서 설산의 절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함께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아, 혼자 산행을 하기로 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혼자 다녀온 나에게 혼자하는 산행은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는 방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 아이젠을 잃어버릴 것을 대비해 두개를 챙겼다. (실제로 몇해전 겨울 지리산 능선길에서 아이젠을 한짝이 발에서 벗겨져 잃어려 곤란을 당한적이 있다.) 그리고, 충분한 물과 음식을 챙겼다. (나는 산행을 가면 점심으로 컵라면과 김밥을 산 정상에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작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져가면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컵라면은 튀김우동을 즐겨 먹는다. 튀김우동은 맵거나 짜지 않아서 국물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고, 먹은 후에 물이 많이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산의 능선을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산행의 경로를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 능선을 타고 천황봉까지 간 후에 내려오는 경로를 택했다. (16.8km, 6시간 소요)

속리산 산행 경로

대전에서 속리산까지 한시간 정도 걸리기에 날이 밝는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할 생각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아침 6시쯤 집을 나섰다.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곳을 가는 설래임과 함께 길을 나서 7시 조금 지나서 속리산 입구에 도착했다.

속까지 시원해지는 이른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행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 긴 하루가 주는 넉넉한 여유와 큰 숨 한번이면 다시 채워지는 활력으로 높이 솟아오른 산을 올려보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보낼 하루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에 들어섰다. (2007년 1월 치악산을 오를 때, 길을 안내해주시던 셀파분이 하루종일 걸어도 피곤해하지 않을 만큼 발걸음이 경쾌하다고 칭찬해주신 적이 있다. 당시 KT 신입사원 교육으로 치악산을 전문 셀파와 함께 동기들과 함께 올랐다.)

앞뒤를 돌아보아도 산을 오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에 이르면 이 길 저 길로 오른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기에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세심정(洗心亭)까지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된 평지같은 완만한 길이었다. 세심정을 지나 산길을 걷자니 땀이 나기 시작해 옷을 한 겹벗어 베낭에 넣고 오르면서 먹을 간식을 손 닿기 쉬운 곳에 꺼내 두었다. 베낭정리에 잠시 길을 멈춘 사이 나처럼 혼자 산행길에 나선 분이 저만치 뒤에 오는게 보였다. 이 분과는 청황봉과 상고암의 갈림길까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걸었다.

문장대까지의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겨우내 온 눈이 다 녹지 않아 길이 미끄러웠지만 오를만 했다. 간간히 산 기슭에 묵과 전, 막걸리를 파는 쉼터가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첫 행인인지 한 쉼터의 할머니는 쉬어가라며 부르기까지 했다.

문장대를 오르는 산길

문장대를 오르며 뒤돌아본 풍경

산행을 시작한지 두어시간이 지난 9시 50분쯤 문장대에 다다랐다.

문장대(해발 1,054m)

문장대 표석의 후면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그야 말로 일품, 기대 이상이었다. 산넘어 산, 겹겹히 펼쳐진 산 허리들와 햇살이 막 미치기 시작한 먼 지평선 가까이에 아직 서려있는 구름선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 꼭 이 절경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문장대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아내와 어머니,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 정상에 선 기쁨을 전했다. (장모님은 아쉽게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홀로 산행을 나선 그 분의 사진도 한장 찍어드렸다.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절경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관음봉

문장대에서 바라본 천황봉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절경

문장대에서 저 멀리 천황봉과 함께 속리산의 능선이 보였다. 천황봉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고 능선길을 따라 천황봉으로 출발했다.

문장대에서 본 속리산 능선

능선길을 따라 조금 가다 뒤를 돌아보니 문장대가 어느덧 멀어져 있었다.

속리산 능선길에서 본 문장대

능선길도 눈이 아직 녹지 않아 길이 미끄러웠다. 문장대까지는 오르막길만 죽 있어서 눈이 쌓여있어도 그리 미끄럽지 않았는데 내리막 길도 있는 능선길을 가자니 좀 위험해보였다. 능선길에서 처음 만난 내리막길에서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나와 함께 문장대를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오른 그 분이 나를 앞서서 길을 갔다.

속리산 능선길

문장대에서 천황봉은 두시간 가량 걸렸다. 천황봉과 상봉암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천황봉으로 가는 길은 바위 아래로 나 있어서 상봉암으로 가다가 되돌아왔다.) 12시쯤 천황봉에 도착했는데, 천황봉에 오르기 위해 마지막 경사길을 걷는데 허기가 졌다. 천황봉에는 사람들이 많아 비좁았다. 나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컵라면과 김밥을 천황봉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점심으로 먹었다. (산행에서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

천황봉(해발 1,058m)

기온이 높아져가면서 수증기가 증발하는지 시야가 오전 문장대에서 만큼 좋지 않았지만, 천황봉에서도 꽤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천황봉에서 바라본 문장대

천황봉에서 하산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산은 내려올 때가 더 힘들다) 내리막길은 녹지 않은 눈과 눈이 녹다가 얼어붙은 얼음으로 미끄러웠고, 아이젠은 발걸음을 불편하게 했으며, 두 다리의 힘은 점점 빠져갔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주머니 두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내려왔다. 이 두 분은 자식 이야기며 친구이야기며 줄곧 하셨는데, 이를 엿들으며 지겹지 않게 내려왔다.

한시간 넘게 걸려 세심정에 도착했고, 세심정에서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법주사까지 2.8km나 되는데 놀랐다. (올라갈때는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발걸음을 빨리해 법주사에 도착하니 기진맥진이 되었다. 피곤해 법주사를 지나쳐갈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법주사의 안내판에는 법주사 경내에 있는 국보가 소개되어있었는데, 이는 나의 본전의식을 강하게 자극했다. (사찰입장료를 3천원이나 냈던 것이다.) 올해 간절히 바라는 소원도 있고 해서 법주사 경내의 부처님들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보 5호)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

법주사 석연지 (국보 64호)

법주사 경내

속리산 산행을 마치고, 법주사를 돌아보고 집으로 오는데 피곤이 몰려왔다. 운전하는데 잠이 와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손이 시리는 것으로 잠을 쫒으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줄 귤 한 상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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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